한국이 북한의 ‘형제국’이자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와 전격 수교를 맺으면서 외교의 새 지평을 열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과 친밀한 쿠바와 수교를 체결함으로써 그만큼 북한의 고립도 심화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15일 외교부에 따르면 대한민국과 쿠바는 1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양국 주유엔대표부 간 외교 공한 교환을 통해 양국 대사급 외교 관계 수립에 합의했다. 쿠바는 우리나라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다. 이로써 유엔 회원국 중 수교를 맺지 않은 나라는 시리아 1개국만 남게 됐다.
이번 수교는 007 작전을 방불케 할만큼 극비리에 진행됐다. 우리는 20여 년 이상 쿠바와 수교를 추진해왔으며 쿠바 내에서도 최근 한국과의 협력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다. 수교 협의는 설 연휴 기간에 미국 뉴욕의 주유엔대표부 창구를 통해 급진전됐다. 양국 유엔대표부에서도 황준국 대사와 헤라르도 페날베르 포르탈 대사를 포함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협상이 진행 중인 것을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의 한 고위 관계자는 15일 기자들과 만나 “협상 상황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소상히 보고됐다”며 “최종 합의가 설 연휴 기간 중 있었고 이를 윤 대통령에게 전화로 보고했다”고 전했다.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쿠바와 수교 안건은 이달 13일 국무회의에서도 비공개로 상정돼 처리가 됐다. 국무위원들은 회의에 참석한 뒤에야 수교안이 적힌 종이를 보고 수교 방침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이어 수교 사실 공표와 관련해 발표하는 시각의 ‘분’까지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부적으로 뉴욕 시간으로 14일 오전 8시(한국 시간 14일 오후 10시) 외교 공한을 교환한 뒤 정확히 5분 뒤 이를 공표하기로 했다.
협상 과정을 극비리에 부친 것은 북한의 반발과 공작 가능성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아울러 쿠바 입장에서도 형제국 북한과 맞서 있는 한국과의 수교가 요란하게 진행될 경우 북한과의 관계에 좋을 것이 없기 때문에 극비리에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수교 직전에 미국에도 수교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통보했다”고 전했다.
쿠바가 우리와 수교에 나선 것은 수교국을 늘려 나간다는 정책 흐름과 경제 교류 등을 감안한 조치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쿠바가 190여 개국과 수교를 하고 있다”며 “미수교국은 우리와 이스라엘 정도였는데 그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쿠바 내에서도 한류 등으로 한국에 대한 호감이 있어 쿠바 정부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경제협력 등에 대한 기대감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쿠바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 물가 상승률은 30%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과학기술과 디지털 산업 등에서 앞서 있는 한국과의 수교로 쿠바도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수교는 결국 역사적 흐름 속에서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또 “이번 수교는 과거 동구권 국가를 포함해 북한과 우호적인 국가였던 ‘대(對)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며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1989년 동구권 중 헝가리와 처음으로 수교하고 소련의 체제 변화와 맞물려 동구권 나라와 연쇄 수교를 맺은 바 있다.
실제 북한 매체는 15일 북한 주재 외교단 소식을 전하며 이례적으로 쿠바는 쏙 빼놓아 이번 수교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일 동지의 탄생 82돌에 즈음해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 우리나라 주재 외교단이 꽃바구니와 축하 편지를 드렸다”고 전하면서 러시아·베트남 대사 소식은 전했지만 쿠바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조선중앙통신도 전날 열린 외교단 연회를 다뤘지만 쿠바 관련 내용은 제외했다. 과거 북한 매체들이 주북 외교단 소식을 전할 때 쿠바가 제외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상주 공관을 개설하기 위한 방안 등 양국 정부 차원의 협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공관이 개설되면 비자를 받는 것이 수월해질 수 있고 사건 사고 발생 시 영사 조력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