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사령탑 반복 않으려면…'첫 단추' 계약서가 중요 [서재원의 축덕축톡]

정몽규 독단 결정에 체계 무너져
거주조건 등 촘촘하지 못한 계약
갑을관계 바뀌어 조치도 못 취해
반면교사 삼고 새 감독땐 바뀌어야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선임 과정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갑을 관계가 뒤집힌 조건으로 계약한 클린스만 감독에게 특별한 마법을 기대하는 건 허황된 꿈에 불과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선임 때부터 잡음이 많았다. 사실 지난해 초 사령탑 선임 및 협상 과정에서 그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화려한 선수 경력과 달리 지도자로서 자질과 능력에 의문을 남긴 인물이기 때문이다. 2019년 헤르타 베를린(독일)에서는 77일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무능과 무책임의 끝을 보여주기도 했다. ‘실패한 감독’으로 낙인찍힌 그는 약 3년에 가까운 경력 공백도 겪었다.


호세 보르달라스(스페인), 토르스텐 핑크(독일), 바히드 할릴호지치(보스니아) 등이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클린스만 감독이 우선 협상자가 돼 있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심지어 감독 선임 절차에서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는 아예 배제됐다. 당시 한 위원은 “아무런 논의도 이뤄지지 않다가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는 이야기를 통보받았다”고 말하며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독단적 결정으로 선임된 사령탑이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불리한 계약 조건이 성립됐다. 협회는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 “국내 거주를 계약 조건에 포함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자유롭게 미국과 유럽을 오갔고 이번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지 이틀 만인 이달 10일 또다시 미국으로 출국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축구계 관계자는 15일 서울경제신문에 “클린스만 감독이 국내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외부 활동이 가능하다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며 “외부 활동에 대한 정확한 명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출국을 막지 못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결과적으로 촘촘하게 쓰이지 못한 계약이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고용주인 협회는 피고용인 클린스만 감독의 광폭 행보를 막지 못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협회가 월급을 주면서도 클린스만 감독의 일정 하나도 통제 못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계약 내용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갑을 관계가 완전히 뒤바뀐 모습”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한 번 잘못 쓰인 계약은 1년 만에 한국 축구를 위기로 내몰았다. 아시안컵 실패라는 결과를 차치하더라도 대회 기간 대표팀 선수 간 불화 사실이 공개되면서 한국 축구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주장 손흥민과 차세대 에이스 이강인의 충돌 내용이라 충격은 배가됐다.


‘자율’을 강조하던 클린스만 감독의 선수단 관리 능력까지 도마 위에 오르면서 그와의 동행은 결국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15일 전력강화위는 클린스만 감독이 더 이상 대표팀 감독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리고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된다면 당장 다음 달부터 계속되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부터 대표팀을 이끌 새 사령탑을 선임해야 한다. 시스템이 붕괴된 채 선임한 클린스만 감독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보다 촘촘한 계약서 작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