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인 토마스 만과 노먼 온스타인은 12년 전 ‘보기보다 더 나쁘다’라는 책을 통해 “공화당은 미국 정치에서 반군적 특성이 있는 정당으로 문제점이 많다. 공화당은 이념적으로 극단적이며 타협을 경멸한다. 공화당은 사실과 증거·과학을 수용하지 않으려 하고 정치적으로는 야당의 정당성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만과 온스타인은 또 “한 정당이 주요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멀리하면 정치가 국가의 과제를 건설적으로 처리하기 힘들다”고 경고했다.
최근 미국 정치권, 특히 공화당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상황이 만과 온스타인이 책에서 지적한 것보다 더 좋지 않다. 민주적 정치는 정책에 대한 효과를 논의하고 아이디어 교환과 토론을 할 때 가능해진다. 어떤 정당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정책과 홍보를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거짓말도 동원된다.
일례로 과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공화당원들은 미국 남부 국경 강화라는 정책을 펼쳤다. 당시 공화당에서 민주당과 국경 강화 정책에 대한 협상을 주도한 이는 제임스 랭크퍼드 상원의원이다. 미국 국민들은 이민자에 대해 엄격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랭크퍼드 의원의 견해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2년 “랭크퍼드 의원은 국경 강화에 큰 일을 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그런데 그는 이후 “나는 랭크퍼드 의원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누가 봐도 거짓말이다. 만과 온스타인은 책에서 공화당의 거짓말과 사실·증거·과학을 수용하지 않는 행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잘 설명하고 지적했다.
공화당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공화당의 주류(권력)는 선출직 공무원에서 텔레비전, 라디오, 팟캐스트, 온라인 우익 평론가들 쪽으로 이동했다. 여기에서 또 공화당의 문제가 드러난다. 공화당의 주류는 자기들 입맛에 맞는 매체만 선별해 수용한다. 공화당의 주류 인사들과 다수 의원들은 객관적 뉴스보다는 공화당에 유리하게 거짓 보도하는 친공화당 매체에만 의존한다.
공화당은 과학과 냉정한 연구, 기술 지식도 폄하하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톰 니컬러스 작가는 자신의 저서 ‘전문 지식의 죽음’에서 이런 공화당의 분위기를 “기존 지식에 반대하는 캠페인”이라고 비판적으로 묘사했다.
‘도전’이라는 것은 민주적 권리이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불러내는 데 유용한 도구로도 쓰인다. 공화당은 이 도전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편집한다.
기후 문제 해결이라는 미국 사회의 도전만 하더라도 공화당원 상당수가 소극적이거나 격렬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공화당원들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2007년 지구온난화에 대한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원의 62%가 지구온난화에 대해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대답했지만 2009년 조사에서는 35%만이 지구온난화의 증거를 믿는다고 답했다. 기후 문제 해결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거나 반대하는 것이다. 결국 공화당은 기후 문제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공화당의 입장이 바뀌는 배경에는 당의 핵심 인물이 미치는 영향도 크다. 공화당에서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입김이 강했던 존 매케인은 2000년대 초 기후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나중에는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후 많은 공화당원들이 기후 문제를 멀리했는데 이는 매케인 덕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이민자 문제를 회피하는 공화당원들 역시 랭크퍼드 의원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최근 자녀 세금 공제에 대한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상원의원들도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진행되는 방식을 보면 공화당 의원들은 상대방의 뜻을 어느 정도 수용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지금 공화당의 분위기는 공화당에 투표하는 곳을 진짜 미국으로 규정한다. 조시 부시 전 대통령 시대에도 그런 분위기였는데 이게 당내 관습처럼 또 그런 분위기로 가고 있다.
지금 이런 공화당의 행태를 보고 만과 온스타인은 무슨 생각을 할까. 12년 전 공화당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작심 비판했던 만과 온스타인이 또 책을 낸다면 아마 이런 단어가 필요할 수 있겠다. 그 단어는 바로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