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국 고유의 문화’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고유의 문화’라는 것은 아마도 한복, 김치, 아리랑 등 ‘우리 문화’라는 표현에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의미할 것이다. ‘이 세상에 순수한 문화는 없다’고 주장하는 하버드대 교수 마틴 푸크너는 ‘한국 고유의 문화’라는 표현을 알고 있을까. 한복이 누구의 문화인지, 김치가 어디에서 처음 기원한 음식인지를 두고 중국와 다투는 우리의 모습을 파틴 푸크너는 어떻게 바라볼까.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는 ‘글이 만든 세계’, ‘노튼 세계 문학 선집’의 편집자인 마틴 푸크너가 4000년에 걸친 인류 문화의 15가지 이야기를 집대성한 문화사 서적이다. 그는 인간이 다른 지역이나 대륙으로 이동하면서 자신의 문화를 옮겨 가고, 이주한 지역의 기존 문화와 혼합하는 과정이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을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로마 문화를 보자. 로마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후 자신들의 위업을 과시하기 위해 그리스 문학을 활용했다. 수많은 그리스 교육자들이 로마에 노예로 끌려와 아이들을 가르쳤고, 폼페이의 지식인들은 그리스어를 쓰며 그리스 작가의 원전을 인용했다. 로마는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로마 문화는 그리스 문화를 기반으로 변형되었고, 확대 재생산 됐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등장인물 아이네이아스는 로마의 시조가 되어 로마의 기원을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문화 혼합의 사례는 인류 역사 내내 전 지구에 걸쳐 일어난다. 히브리의 성경을 구약으로, 기독교 정전을 신약으로 정의하는 오늘날의 성경 역시 사실은 두 문화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저자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 역사를 진일보하게 만드는 힘은 독창성과 고유성 신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인류의 수많은 역사서는 제대로 된 원작자가 없다. 원작자가 있더라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실 원작보다는 재해석된 결과물이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백인과 남성만을 위해 탄생한 유럽의 자연권 사상은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의 노예 혁명을 촉발해 독립국가 아이티를 탄생시켰고, 인도의 불교 경전을 찾기 위해 16년간 여행을 다닌 중국의 현장 법사 덕분에 사람들은 인도가 아닌 중국의 불교를 통해서도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깨닫는다.
기묘하게도 지금 세상은 고유성을 탐닉하는 국수주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저자는 타지의 문화를 배척하려는 움직임이 과연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지 묻는다. 이는 단지 특정 국가, 국민에게만 적용되는 질문은 아니다. 이미 한민족이 아닌 다민족의 사회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유효하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뤄온 수많은 문화적 성취는 과연 고유한 것인가. 이같은 문화적 성장이 앞으로 수세기동안 이어지고, 후대 역시 이 문화적 풍요로움을 누리기 위해서 현 세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는 그 답을 찾는데 통찰력을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