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일본의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놓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중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15일 담화에서 “일본이 이미 해결된 납치 문제를 양국관계 전망의 장애물로만 놓지 않는다면 (기시다 후미오)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16일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납치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주장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본인 납북 문제는 무엇일까.
시작은 1970~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정부가 발행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한국어판에 따르면 이 시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행방불명이 됐다. 일본 당국에 의한 수사와 일본에 망명한 북한 공작원의 증언을 통해 수사 당국은 이 사건들의 대부분이 북한에 의한 납치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특히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주범인 김현희는 북한에 ‘리은혜’라고 불리는 일본인 여선생이 있다는 증언을 해 파장을 낳았다. 김현희는 리은혜로부터 일본인으로서의 행동거지를 배웠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리은혜가 1978년 6월 행방불명된 다구치 야에코와 동일 인물이라고 추정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1991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에 납치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북한은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다 200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1차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처음으로 납치를 시인하고 사죄했으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납치라는 미증유의 국가적 범죄를 한 배경에는 공작원에 의한 신분 위장, 공작원의 일본인화 교육을 위한 이용 등의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일본인 17명을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로 인정하고 있다. 이 중 5명은 1차 북일 정상회담 직후인 2002년 10월 귀국했다. 또 2004년 2차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납북 피해자 5명의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일본으로 입국하기도 했다.
이 문제를 놓고 북한과 일본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 북한은 1, 2차 북일 정상회담과 그 이후 이행된 후속 조치로 일본인 납치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15일 김여정 부부장도 ‘이미 해결된 납치문제’라고 표현했다. 북한은 납치 인원이 일본의 주장(17명)과 달리 13명이고 이미 귀국한 5명 외에 나머지 8명은 북한에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납치 피해자가 17명이며, 일본으로 귀환한 5명 이외에 12명이 북한에 생존해있을 가능성이 있는지 등 관련 진상 규명 요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일본은 북한이 주장하는 8인의 사망자의 사인(死因)에 부자연사가 많은 데다 객관적인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본인 납치자 문제 때마다 관심을 모은 요코타 메구미(1977년 납치 당시 13세)가 북한이 통보한 사망자 명단에 포함돼있다. 북한 측은 메구미가 1993년 1월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해 3월 정신병으로 자살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2004년 11월 메구미의 유골을 일본에 전달했는데, 감정 결과 그 중 일부에서 메구미와는 다른 DNA가 검출됐다.
일본 정부는 납치자 문제와 핵·미사일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