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의 거수기 반성 [기자의눈]

김창영 사회부 기자


“우리 의회는 정책과 예산에서 집행기관이 제출만 하면 통과시켜주는 ‘통과 의회’의 관성과 관행을 과감히 허물었습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이 기자들 앞에 섰던 지난달 23일. 의장이 33년 만에 신년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는 점이나 입법기관이 저출생 대책을 발표했다는 파격보다 ‘통과 의회’ 발언에 관심이 갔다. 입법기관의 수장이 행정기관 뜻대로 조례·예산안을 통과시켜주는 거수기 역할을 해왔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김 의장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통과 의회 관행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한강 리버버스 사업만 봐도 그렇다. 서울시는 지난해 용역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한강 리버버스 사업을 시행하겠다며 200억 원이 넘는 항구 조성 예산을 편성했다. 운항 요금·노선·시간 등 핵심 내용이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6년간 약 8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비용 추계까지 나왔지만 예산은 가뿐히 시의회 문턱을 넘었다. 김포 운항 노선이 빠지면서 리버버스가 ‘김포골드라인 사태’ 대책이라는 의미를 잃고 관광용 우려가 나왔으나 제동은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시는 지난해 말까지 확정된 요금과 노선을 시의회에 보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상임위원들은 한 달 뒤 서울시장의 발표를 통해서야 내용을 접했다. 이런 일이 국회와 정부 사이에 벌어졌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통과 의회는 의원들이 자초했다. 회기가 끝나면 의원실 문을 걸어 잠그고 겸직 활동에 몰두하거나 지역구 행사를 뛴다. 지방자치법상 서면 신고만 하면 유보수 겸직 활동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심지어 임대사업자가 관련 상임위원회 활동을 해도 제동을 걸지 않는다. 비회기 중 의원실 앞에 쌓인 안건들은 제대로 검토조차 되지 않은 채 회기가 열리면 무리 없이 통과된다. 시의회 보고를 다녀온 뒤 “어차피 읽어보지도 않는다”며 씁쓸해하던 시 공무원들의 냉소적 반응은 틀리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 선언으로 지방자치단체가 틀어쥔 광역·기초의회 조직권과 예산권을 지방의회에 넘겨줄 때가 됐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오히려 “지방의회가 무슨 일을 하느냐”며 광역·기초의원을 통합하자고 말한다. 그만큼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통과 의회였다는 반성에만 그치지 말고 정말로 거수기에서 벗어나야 지방의회 독립론이 설득력을 얻는다. 때마침 개회한 시의회 임시회에서는 변화된 모습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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