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중장년 고용 우수기업' 사례집을 통해 다양한 기업과 업종의 중장년 인력활용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각기 다른 업종에 속한, 조직문화도 각각 다른 기업들이 어떻게 계속고용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었습니다. 이미 산업 현장에는 각자의 체질에 맞춰 계속고용의 틀을 만들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 중인 기업들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 서울경제신문 라이프점프는 모범적인 중장년 고용 우수기업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우수 사례가 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2024 일자리 열차는 계속 달린다>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국내의 중장년 고용 사례를 살펴보면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중장년 고용의 급여 수준과 기간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양국의 노동 시장을 연구해 온 김명중(사진)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안정적)고용과 임금을 둘 다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수십 년에 걸쳐 변화를 이끌어낸 일본의 교훈을 제시했다. 기업의 부담을 고려하면서 끈기 있게 뒷받침한 정부, 노동력 부족의 대안을 고민한 기업들의 역할이 컸다. 일본 정부는 제도의 허점과 시장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지금도 리스킬링(Re-skiiling·근로자 재학습), 직무급 도입 등 꾸준히 정책을 업데이트하고 있다는 것이 김 수석연구원의 설명이다.
일본 역시 정년이 지난 후에는 임금이 감소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2017년 도쿄에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재고용 급여는 정년 전의 60~70%였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은 상황이 달라졌다. 몇몇 변화가 재고용 임금 상승을 이끌었다. 첫 번째 변화는 노동력 부족이다. 2000년대 이후 노동력 부족이 점차 심화되다보니 고령 근로자들의 몸값이 자연스럽게 올랐다. 두 번째로 지난 2019년 정부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등을 담은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법을 제정하면서 재고용자의 임금을 깎기 어려워졌다. 김 수석연구원은 “물론 업무의 책임이 훨씬 덜한 직급 또는 지방 근무 등 예외를 뒀지만 전반적인 임금 차별이 없도록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중소기업까지 따르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생산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임금을 올린 사례도 있다. 혼다가 대표적이다. 혼다는 당초 정년을 그대로 둔 채 계속고용을 택했다. 계속고용시 임금은 정년퇴직 전의 50% 수준이었다. 그러나 계속고용자들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판단 하에 아예 정년을 폐지하고 임금 수준을 80%까지 높였다. 다만 재원 확보를 위해 몇 가지 수당을 줄이거나 없앴다. 김 수석연구원은 “출장 일당, 가족 수당을 없애는 등 전 직원이 부담을 분담했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은 고령자 고용 장려를 위해 기업에 계속고용(정년퇴직 후 비정규직 등으로 재고용)·정년연장·정년폐지라는 세 가지 선택지를 줬고, 대부분의 기업은 초반에 가장 부담이 적은 계속고용을 선택했다. 이후 계속고용으로 생겨나는 문제점을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개선해왔고, 노동력 부족이 심해지는 과정에서 정부가 ‘일하는 방식 개혁’을 이끌고, 결과적으로 물흐르듯 임금이 인상됐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60세 이후 근로자의 임금이 59세 대비 75% 이하로 떨어지면 정부가 일정 부분을 보전해주며 고령자들의 소득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교훈을 한국의 정책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김 수석연구원의 지적이다. 그는 “정년퇴직(60세) 후 연금 수급(65세)까지 5년간 소득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기업들도 협력하도록 설득하되, 다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며 “앞으로 노동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고령자들을 더 활용할 방안을 고민하자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일본은 최근 수 년간 리스킬링이 화두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22년 말 “정부가 리스킬링 등 인적 투자에 향후 5년 간 1조엔(약 8조9000억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 수석연구원은 “일본 경제산업성에서 리스킬링 참가 기업을 모집하고 수강료 상당 부분을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40대 중반 근로자들부터 리스킬링에 참여하도록, 그리고 노동력이 부족한 일자리로 자연스럽게 전직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중장년 근로자들은 경제산업성이 지원하는 웹디자인이나 동영상 제작, 프로그래밍 같은 리스킬링 강좌를 수강하면 수강료의 절반(최대 40만엔)을 지원받고, 이후 실제 전직에 성공해 1년이 지나면 수강료의 5분의 1(최대 16만엔) 가량을 추가로 받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성장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인재를 확보하고, 반대로 경쟁력 없는 ‘좀비 기업’들은 인력난 심화로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다만 충분히 리스킬링을 하지 못한 고령 근로자는 소외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더욱 리스킬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리스킬링’과 ‘성장 산업으로의 원활한 인력 이동’, ‘직무급 도입’을 ‘삼위일체 노동시장 개혁 과제’로 추진 중이다. 직무급은 연공서열과 상관 없이 직무에 따라 급여를 받는 체제로, 기업 입장에서는 연령·경력 관계 없이 인재를 채용하고 급여를 책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일본 대기업인 히타치, NTT 등이 직무급 체제를 일부 도입했다.
물론 일본의 사례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일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고령자 소득, 심각한 청년실업률,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 등을 고려해 보완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김 수석연구원은 일본과의 ‘노동시장 자유무역협정(FTA)’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매년 소프트웨어공학 등 정보기술(IT) 관련 학과 졸업생이 3만 명에 이르지만 일본은 2030년께 58만명 규모의 IT 인재 부족을 전망할 만큼 인력 확보가 어렵다. 이미 일본 내 한국인 취업자들의 업종 분포에서 정보통신업이 13.9%(전체 외국인 기준 4.2%)로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다. 김 수석연구원은 “꼭 국내에서만 해결할 필요 없이 IT 인재가 일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향후 다른 나라와도 노동시장 FTA를 체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해외 일자리를 찾아 떠난 빈 자리는 국내 청년, 중장년과 고령자 등이 자연스럽게 채울 것이란 이야기다.
이밖에 김 수석연구원은 일본에서 보편화돼 있는 잡 셰어링도 주목할 만한 모델로 지목했다. 1명을 고용할 자리에 1.5~2명을 고용하는 식이다. 잡셰어링으로 인해 급여가 줄어들긴 하지만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종일 근무를 원하지 않는 고령자·주부 등도 근로 시장에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김 수석연구원은 베테랑과 청년이 짝을 이루는 '페어(pair·한 쌍) 취업'의 사례도 제시했다. 오키나와에 위치한 나카모토공업은 시니어와 청년이 2인 1조로 근무한다. 기술을 전수한다는 취지다. 최근에는 소통을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해 40대 안팎의 중간연령층까지 포함하는 3인 1조로 업무를 추진해 인재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바라키현의 주식회사 비올라는 시니어 사원과 젊은 장애인 사원이 페어로 근무한다. 시니어는 기술 전수와 상담을 맡고 장애인 사원은 시니어 사원을 보조하며 기술을 갈고닦는 식이다.
김 수석연구원은 “굉장히 어렵긴 하겠지만 일본처럼 건강한 중소기업, 강소기업이 많아져서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자본집약적인 대기업들은 점점 고용유발효과가 떨어지는 추세인 만큼 노동집약적이면서도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