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언어정담]치유적 언어의 힘

작가


매일 아침의 감정과 상태가 시시각각 바뀌기에, 자신의 마음이 싫어질 때가 있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왜 그런 수치심과 굴욕감을 잊어버리지 못할까. 왜 슬픔은 좀처럼 떠날 생각을 안 하는 것일까. 왜 어떤 날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견딜 수 없이 마음이 아픈 걸까. 그런데 페르시아 시인 루미(1207~1273)는 ‘게스트하우스’라는 시에서 우리 몸이 날마다 새로운 손님을 받아주는 게스트하우스라고 이야기한다. 시시각각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모든 감정까지도 환영하고, 기쁘게 맞이하라는 것이다. “기쁨, 우울, 비열함, 어떤 순간적인 깨달음이/예기치 않은 방문객으로 찾아옵니다.” “그들을 모두 환영하고 기쁘게 맞이하세요! /비록 그들이 슬픔의 무리일지라도,/그들이 당신의 집을 폭력적으로 쓸어버리고/ 당신의 살림을 싹쓸이하더라도/그래도 손님 한 명 한 명을 정성스레 맞이하세요.”


타인의 무례함, 타인의 공격, 게다가 나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까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충만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 무엇도 담을 수 있는 존재,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런 문장을 사랑한다. 지금 당장 가능하지 않을지라도, 내게 그런 커다란 꿈을 심어주는 문장을. 그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경계선이 확장되는 느낌을 주는 문장. 그 문장을 가슴에 새기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잠재력을 발견하는 듯한 그런 문장을. 나는 사랑하는 것이었구나. 읽는 이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는 문장은 단지 배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을 바꾸는 용기까지 덤으로 선물해준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는 그런 곤란한 손님들, 불청객, 사랑하기 어려운 존재들은 도대체 왜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는 걸까. 루미는 그 질문에 대한 해답까지 친절하게 일러준다. 그들이 당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고 작정하는 이유는, 꽉 찬 나를 확 비워버려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메시지일수도 있다고. 시의 결말은 더욱 파격적이다. “어두운 생각, 수치심, 악의는 모두 없애버리고/문 앞에서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고/그리고 그들을 안으로 초대하세요./누가 오든 감사하세요./왜냐하면 그들은 저 너머에서/저 너머의 안내자로 보내졌으니까요.”


가장 나쁜 손님일지라도, 가장 따뜻한 미소로 맞이해야 한다니. 나는 이 시의 세계관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 시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대부분의 ‘쉬운 아름다움’은 우리의 마음에 설탕옷을 입힌다. 달달하게 만들어서 깜빡 홀리는 것이다. 마치 탕후루나 곰모양 젤리처럼, 쉽고 직설적인 어여쁨은 그렇게 우리의 혀끝과 눈동자를 간질인다. 그러나 이렇듯 ‘어려운 아름다움’은 일단 우리의 마음을 한 번 부서뜨린다. 내가 동의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을 향하여. 나의 차가운 이성은 거부하지만 나의 뜨거운 감성은 그 어려운 아름다움을 못 말리게 사랑한다. 너무 많은 스트레스가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날,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이 당신의 상처입은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주기를.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