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출연금 끌어쓴 정부…'올해만 4.2조'

1년새 64% 급증
환란때 구조조정자금 회수 명목
2021년 조기상환…사실상 준조세
"금융권 부담 재산정해야" 목소리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 구조조정에 투입한 자금을 회수한다는 명목으로 은행 등 금융회사들로부터 걷는 돈이 올해 4조 25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금융회사들의 구조조정에 쓴 비용은 이미 3년 전 모두 충당됐는데도 이렇다 할 이유 없이 사실상 준(準)조세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해 역대 최대 ‘세수 펑크’가 발생했을 정도로 나라 살림이 빠듯해지자 금융회사들에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는 올해 예금보험공사 소관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예보채상환기금) 중 4조 2500억 원을 기재부의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으로 전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전출금(2조 6000억 원)보다 무려 63.5%나 급증한 규모다. 그간 연 전출 금액이 1조~2조 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 들어 이례적으로 크게 늘었다.


예보채상환기금은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 구조조정에 투입된 공적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2002년 조성됐다. 당시 정부는 구조조정에 총 69조 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정부가 49조 원을 내고 법률을 통해 은행 등 예금보험을 적용받는 부보 금융기관이 2027년까지 매년 예금 잔액의 0.1%를 예보채상환기금에 채우도록 했다.


정부가 은행의 출연금을 공자기금으로 전출하기 시작한 것은 전체 구조조정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줄어 2021년 조기 상환이 완료된 후부터다. 예보채상환기금 내 여유 자금이 생기자 초과 납부분을 공자기금으로 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자기금은 각종 기금 등의 여유 자금을 통합 관리해 재정융자 등에 활용하고 국채의 발행과 상환 등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금이다.



은행 특별기여금 예금잔액에 연동


자연스레 출연금도 늘어나는 구조


분담몫 20조중 19조 납부한 금융권


납부 기한 3년 더 남아 불만 고조








예보채상환기금에서 공자기금으로 빠져나가는 자금은 해마다 빠르게 늘고 있다. 2021년 1조 2500억 원이었던 것이 불과 3년 사이 3배를 훌쩍 넘는 4조 2500억 원까지 증가했다. 예보채상환기금은 금융권 구조조정에 쓰였고 금융회사들의 재원 충당도 2021년에 끝났다. 하지만 정부는 법률상 2027년까지 금융회사들의 기금 납부가 명시돼 있다는 이유로 납입을 강제하고 있다. 결국 예보채상환기금은 ‘그림자 조세’로 나라 곳간을 메우는 데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은행권이 가장 크게 반발하는 대목은 부담금을 내야 할 명분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이 같은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예보채상환기금은 외환위기 이후인 2002년 은행권 구조조정에 필요한 대금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범했다. 도입 당시 추산한 구조조정 소요 비용은 총 69조 원. 정부는 49조 원을 일시 납부하고 은행은 25년간 20조 원을 분납하는 방식으로 재원 부담을 나눠지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 구조조정에 투입된 비용은 전망치보다 적었고 계획보다 6년이나 이른 2021년 소요 자금을 모두 충당할 수 있게 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계획상 은행은 2027년까지 부담금을 내게 돼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출연을 강제하고 있어 은행권의 불만이 큰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앞으로 5년 동안은 매년 준조세로 수조 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금융회사가 납부하는 특별기여금이 예금 잔액에 연동돼 있으니 자연스레 출연금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금융회사들은 당초 분담하기로 한 몫을 거의 충당한 만큼 추가로 부담금을 납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부보금융기관의 누적 출연액은 지난해 기준 19조 원 상당으로 약정 금액을 대부분 납부했다. 한 시중은행의 재무 총괄 임원은 “기금을 출범할 때 내세운 대전제가 해결됐는데 명목상 납부 기한이 남았다며 돈을 내라는 것은 지나친 형식 논리”라고 말했다.


물론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예보채상환기금 출범 당시 은행과 달리 정부는 부담금을 선납했다는 것이다. 은행이 약정 기한까지 돈을 내지 않으면 정부가 당초 계획보다 더 부담을 지게 된다는 논리다. 은행이 당초 약정한 출연금을 대부분 부담했다는 주장에도 “구조조정 대상이 책임을 떠밀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부 관계자는 “구조조정 자금 마련 당시 가장 큰 원칙은 ‘민간이 최대한 부담을 지고 나머지 몫을 정부가 보조한다’는 것이었다”며 “당장 죽겠으니 살려달라고 하다가 상황이 달라지니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금융권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은행들의 부담은 당분간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법에 따르면 모든 부보금융사는 예금 잔액의 0.1%를 매년 출연해야 한다. 예금보험공사 사장을 지낸 한 인사는 “은행 입장에서 바라보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대목이 있긴 하다”면서도 “정부에서 이 문제를 다뤄보려 해도 공연히 ‘은행 편을 든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 선뜻 나서기 쉽지 않아 약정 기한인 2027년이 돼서야 관련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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