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상실' 겪었던 과거의 나에게 빚져"

■'시차와 시대착오' 저자 전하영
女예술가가 마주한 상처 조명
타인·사회와의 '시차'도 다뤄

전하영 소설가 /사진 제공=정희승 작

“예술가 동료로 다가갔지만 이성적인 호감으로 오해를 받는다든가 찍었던 영화의 의도도 곡해를 받으면서 여러 단계에서 상실을 경험한 전하영들이 겹쳐져 캐릭터가 탄생한 것 같아요.”


전하영(사진) 소설가는 첫 소설집 ‘시차와 시대착오’ 출간을 기념해 서울경제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소설 속 캐릭터들을 두고 “지난 시간의 전하영들에 빚졌다”며 이 같이 밝혔다. 2019년 등단한 전 소설가는 등단 3년차인 2021년 단편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로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전 작가의 소설에는 비혼 예술가 여성들이 종종 등장한다. 저마다 섬세한 자의식을 지닌 인물들이 여성 예술가라는 이유로 ‘평가’의 대상이 돼 상처받고 꺾여나간다. 첫 소설집 ‘시차와 시대착오’ 속 단편 ‘영향’에서 주인공 난희는 서른이 넘은 비혼 여성이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이제 더 팔 게 없겠다”는 소리를 듣는다. 한때 대학 강사 자리를 제안받은 적이 있었지만 제안한 사람과의 데이트를 거부하자 물 건너 가기도 한다.


그는 “여성임을 의식하고 예술가가 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내 안에 여러 자아가 있었지만 계속 여성으로 규정됐던 것 같다”며“다시 돌아간다면 ‘아닌 것 같으면 빨리 나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의 소설에는 ‘총명했던 이들이 영화 현장에서 젊음을 흘려보내고 어른의 삶으로 옮겨가지 못해 인생을 망쳤다는 패턴’의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한다. 주변인, 사회와의 시차가 발생하는 부분도 있다. 전 작가 이전에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이야기다. 30대 예술하는 자녀와 70대 부모의 이야기들도 담겼다. 세대 간의 ‘시차’를 지켜보는 것도 관건이다.


소설가로서의 업력은 짧지만 20년 가까이 영화계에 몸 담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와 미국 시카고예술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지만 ‘영화로 잘 풀리지’ 않았다. 등단 직전이 가장 어두운 순간이었다. 그는 “취업을 해보려고 지원서를 내러 갔는데 서류를 빠뜨린 게 있어서 접수 자체를 못했다”며 “‘열심히 살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됐지’하는 비참함에 울면서 은평구의 한 거리를 걸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시 털고 일어나 습작하던 단편을 다시 퇴고했고 몇 달 뒤 등단 소식을 들었다. 그는 “20년 하면 한 번은 기회가 온다”고 거듭 말했다.




20대 때부터 영화는 하루에 네편씩 봤지만 김애란, 신경숙 등 대표 작가들의 작품은 읽은 적이 없었다. 그는 “2017년에 처음 소설 수업을 들으면서 80년대에 태어난 작가들의 소설을 읽고 너무 재밌어서 놀랐다”며 “소설을 읽지 않은 게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원테이크 영화를 따라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40대 소설가로서 영화와 달리 문학계에서는 나이의 장벽이 높다는 것도 언급했다. 그는 “작가의 젊음과 거기에 있는 신선함에 의존하는 게 다른 업계에 비해 크다”며 “다양한 연령대 이야기를 비롯해 20대 예술가 지망생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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