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바뀌고 설명도 부실”… 결국 현실화 된 의료 대란

예고 없이 담당 의사 바뀌어 불편함 겪기도
"응급실에서 항생제 처방도 제대로 안해줘"
전임의들이 전공의 공백 메우고 있는 상황
인턴들도 임용계약서 서명 거부… 악화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병원에는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적혀있다. 신서희 견습기자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은 환자들로 붐비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묘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비웠다는 소식에 워크인(walk-in, 예약을 하지 않고 방문) 환자들이 아예 병원으로 발걸음을 끊었기 때문이다.


가운을 걸친 전공의들로 북적여야 할 병원은 소수의 전문의들과 간호사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예약을 한 환자들만 진료실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고, 일반 환자들은 2차 병원이나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환자를 구급차에 태운 119구조대는 이송 과정에서 세브란스에서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2차 병원을 찾아 갔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일선 현장에 의료 대란이 현실화 되는 분위기다. 환자들은 담당 의사가 바뀌어 불편함을 겪기도 했고, 질병과 관련해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해 병세가 악화되기도 했다.


이날 병원을 방문한 우창규(86) 씨는 “담당 의사가 오늘 나오지 않아 다른 의사가 진료를 봐줬다”라며 “예고도 없이 담당 의사가 바뀌어서 불편함을 겪었고, 약도 괜히 신경쓰여 전에 처방 받았던 대로 달라고 했다”고 불평했다.


응급상황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환자 A(55) 씨는 ”지난주에 목 부위 수술을 받은 뒤 수술 부위가 감염돼 염증으로 재입원했다”며 “수술 당시 의사들이 평소와 달리 자꾸 시계를 보거나 무엇인가에 쫓기듯 설명을 생략하는 등 신경이 다른 곳에 있는 분위기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집에 오고 나니 목 전체가 빨갛게 부어 올라 다시 병원을 찾았다. 잘못하면 패혈증이 발생하거나, 뇌까지 올라가면 사망까지 이르게 되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었다”라며 “다른 교수에게 설명을 들으니 당시 응급실에서 항생제 처방만 받았어도 이렇게까지 부작용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의료계 등에 따르면 세브란스병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수술을 평소 대비 절반 수준으로 축소했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도 수술 일정을 40~50%가량 줄였다.


현재까지는 전임의들이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부 전임의들도 의료 현장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등 인력난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전임의들의 계약 기간이 대부분 이달 말에서 내달 초에 끝나기 때문에 계약을 포기하는 전임의들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련 마무리 단계라 의료 현장에 남아있던 3, 4년 차 레지던트들의 계약 또한 이달 말에서 내달 초 사이에 계약이 만료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앞두고 있는 예비 전임의들마저 임용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고 있어 의료 대란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까지 주요 94개 병원에서 소속 전공의의 약 78.5%인 8897명이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복지부는 이들 중 703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중 5976명은 소속 수련병원으로부터 업무복귀 불이행 확인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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