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의 집단 진료거부가 1주일차에 접어든 가운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가 "진료 파행과 환자 피해가 극심해지고 있다"면서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촉구했다.
23일 오전 11시 보건의료노조는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들의 업무가 타 직종에게 불법적으로 전가되면서 의료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 최희선 위원장은 "보건의료 재난 위기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의사와 정부의 강대강 대치 속에 환자와 병원 노동자 모두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사 업무를 간호사 등에게 떠넘기는 불법 의료가 속출하고 있고 의료 현장에서는 이제 앞으로 1~2주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최 위원장은 "3월 초에 예정된 대학병원 전임의 계약 기간에 전임의, 의대 교수들 마저 환자 곁을 떠나 투쟁에 동참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파국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위원장은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은 의사만이 하고 있다"면서 "정책 백지화를 위해 날짜를 정해놓고 사직서를 내고 일제히 의료현장을 떠난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아닌 명백한 집단 진료 거부"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전공의가 떠난 의료 현장의 실태를 전해주기 위해 대학병원 간호사들도 참석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 A씨는 "한 주동안 유독 코드블루(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행해야 하는 상태)가 많았다. 남은 환자들이 잘못될까 하루하루를 걱정 속에서 보낸다"면서 "의사들의 처우 개선과 올바른 정책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의사직들 모두 환자부터 생각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호소했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는 강제 조기퇴원, 50% 이상의 수술 감축, 입원 거부 등도 속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응급실에서 환자를 돌려보내고 있어서 오히려 폭풍 전야처럼 불안함 가운데 고요하기까지 하다"면서 "간호사만 남은 중환자실에서 위중증 환자분들은 사투를 벌이고 응급 상황시에 콜을 해도 당장 올라와서 환자를 봐줄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PA간호사들이 인턴 전공의들이 해왔던 환자 치료, 외래 진료 등을 의료법상 불법 의료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상황이) 더 절박한 병원 노동자가 파업을 해도 응급실, 중환자실 인력은 100% 남기며 수술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환자 생명과 안전을 위한 필수 유지 부서에는 인력을 투입한다"면서 최소한 필수 의료 전공의들이 하루라도 빨리 복귀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지방사립대학병원에서 근무하시는 간호사 B씨 역시 "PA간호사를 중심으로 의사 외 의료 인력들에게 전분야에서 의사 업무가 전가되고 있다"면서 특히 지방병원의 경우 의사 집단 행동 이전부터 인턴 및 전공의가 항상 부족했기 때문에 의료 공백을 PA 간호사들이 채워왔다고 밝혔다. 이같은 상황에서 더욱 많은 업무가 추가로 넘어와 평일야간 근무는 물론 주말까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B씨는 설명했다.
전공의가 없어 의사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써서 대리 처방을 내거나 각종 시술이나 수술 등에 필요한 동의서를 작성하는 것은 물론, 도뇨관 및 비관 삽입이나 관장, 심폐소생술, 수술 부위 봉합·봉합사 제거· 수술 부위 지혈 및 소독까지 모두 간호사들이 떠안은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의사가 없는 원내 CPR 팀을 구성해 간호사와 응급구조사가 흉부압박 등을 직접 해야 하며 일반 간호사들에게는 혈액 배약 검사, 배액강 세척, 사후 처치 등의 업무가 위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불가피한 불법 의료행위를 이어가는 상황 속에서 매일 의료사고의 위험과 법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호소도 이어졌다.
이에 보건의료노조는 "현재 의료 현장은 언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라면서 의사, 정부, 병원 모두에게 조속한 진료 정상화에 나서기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병원과 전임의 교수는 전공의들에게 조속한 업무 복귀를 설득하고 정부는 강경한 대처 대신 대화 국면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