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없다” “병실 없다” 7개 병원 퇴짜… 80대 심정지 환자 끝내 사망

[전국 곳곳서 의료공백 심화]
53분만에 병원 도착했지만 숨져
의료현장 전문의·간호사 피로누적
일부 병원 수술도 50% 이상 줄여
졸업생들도 임용계약서 서명 거부
서울 시립병원 의료진 45명 충원

전공의들이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한 지 일주일이 지난 26일 서울성모병원 응급실 대기실의 모습. 도혜원 견습기자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며 전공의들이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전국 곳곳의 의료기관에서 의료 공백이 심화되고 있다. 일선 의료 현장에서는 전문의와 간호사들이 전공의 업무를 대체하며 최소한의 기능만 유지하는 가운데 응급 상황에서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헤매다 끝내 환자가 숨진 안타까운 사례도 발생했다.


26일 대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이달 23일 정오께 의식 장애로 쓰러진 80대 여성 A 씨가 대전의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은 A 씨를 이송하기 전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봤지만 7곳의 병원으로부터 ‘전문의가 부재 상황이다’ ‘병실이 없다’ 등의 이유로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A 씨는 이송 중 구급차 안에서 심정지가 발생했고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한 지 53분 만에 대전의 한 종합병원에 겨우 도착했지만 숨지고 말았다. 전공의 사직 사태 이후 응급 환자가 제때 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전소방본부 관계자는 “현장 도착 후 병원까지 도착하는 데 53분이 걸렸다”며 “평소에도 어느 정도 이송 제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일선 의료 현장에 ‘의료 대란’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전공의들의 이탈은 지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3일 오후 7시 기준 전국 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의 약 80.5% 수준인 1만 34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소속 전공의의 72.3%인 9006명은 아예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 이탈이 심각한 상급 종합병원에 남아 있는 의료진의 피로도도 누적되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료노조)은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간호사 등 의료인의 고충 사례를 발표했다. 지방 사립대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B 씨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들은 이번 전공의 집단 진료 거부로 더 많은 의사 업무가 전가되고 있다”며 “각종 시술이나 수술 등에 대한 동의서 받기, 의사 아이디·비밀번호를 사용해 대리 처방 내기, 의무 기록 작성을 비롯해 침습적인 처치나 응급 환자 발생 시 심폐 소생술까지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사립대 병원에서 근무하는 다른 간호사 C 씨는 “병원 현장은 환자를 강제 조기 퇴원시키고 있고 수술도 50% 이상 줄었다”며 “응급 상황 시에 콜을 해도 당장 올라와서 환자를 봐줘야 할 의사는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교수들이 전공의들이 해왔던 일을 대신하느라 늦어져 간호사들이 제세동기를 가동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까지 발생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의료 공백에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간 환자들의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날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한 50대 여성은 “지난주 목 부위 수술을 받았는데 당시 의사들이 설명을 건너뛰거나 시계를 보는 등 무엇인가에 쫓기듯 신경이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수술 이후 염증이 심해져 재차 입원했는데 담당 교수가 ‘패혈증 가능성도 있고, 뇌로 올라갔다면 사망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응급실에서 항생제 처방만 받았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응급실 측이 과실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상급병원의 수술 규모가 줄어들어 1년을 기다려온 수술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한 간호사는 “수술 예약이 보통 1년 단위로 마감되는데 잇따라 취소되고 있고 무기한 연기를 통보하는 중”이라며 “수술이 연기됐다고 환자들에게 설명하기에도 한계가 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인력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는 전임의들이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부 전임의들도 의료 현장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전임의들의 계약 기간이 대부분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에 끝나기 때문에 계약을 포기하는 전임의들이 나올 가능성도 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앞둔 예비 전임의들마저 임용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고 있어 의료 대란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환자들의 불편 사례가 쌓여가는 만큼 현장에 남은 의료진의 체력 역시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전체 의사 930여 명 중 192명에 해당하는 전공의 상당수가 사직서를 낸 분당서울대병원은 전문의들이 전공의를 대신해 당직 근무에 투입되면서 정형외과 등 주요 진료과의 신규 외래 진료는 아예 불가한 상태다. 충북대병원 응급실과 도내 유일의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선 이탈한 전공의 자리를 전문의 7명이 3~4일에 한 번꼴로 당직을 서가면서 채우고 있다. 전남대병원의 경우 일부 중환자실 전문의들이 피로감에 ‘번아웃’을 호소해 이탈 전공의 일부가 환자를 보살피기 위해 복귀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는 의사 집단행동 장기화에 대비해 전공의 공백이 큰 시립병원에 대체 인력 충원을 위한 인건비 26억 원을 긴급 편성하기로 했다. 시는 전공의 공백이 있는 서울의료원·보라매병원·은평병원의 3개 시립 병원에 45명의 의료진 충원한다고 이날 밝혔다. 사태 추이에 따라 3개월간 지원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22일부터 8개 시립 병원의 평일 진료를 18시에서 20시까지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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