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기후대응기금을 지금보다 두 배 늘린 5조 원으로 확대한다는 공약을 발표한 가운데 정부가 기후대응기금 지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녹색기술 관련 연구개발(R&D) 사업이나 녹색금융 사업 등을 집중 지원하는 방식으로 기금 사용처를 재편하겠다는 뜻이다.
2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기후대응기금 지출 구조를 개편해 내년도 예산에 반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안에 기후대응기금 개편안을 다 담지는 못할 것”이라면서도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높은 사업 위주로 기후대응기금을 편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회계로 이관이 가능한 사업을 먼저 찾아보고 집행이 지지부진한 사업은 구조를 바꾸거나 예산을 줄이는 방안까지 고려해 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후대응기금은 기후위기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필요한 정부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2022년 신설됐다.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은 기후대응기금의 용도를 △녹색기술 R&D △녹색금융 지원 △기후위기 피해 노동자 지원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별로 보면 ‘탄소 중립 전환 선도 프로젝트 융자 지원(예산 2236억 원)’ ‘기후변화 적응 및 국민 실천(320억 원)’ 등 기후변화 대응 사업들이 핵심이다.
하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기금 사업 중 탄소 감축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는 항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의 에어컨 신규 설치 지원 사업이 기후대응기금으로 지원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정부 안팎에서는 녹색금융이나 녹색기술 R&D 등 기업 부문의 탄소 감축을 돕는 사업 위주로 기후대응기금이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후대응기금에서 녹색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19%이고 R&D는 18%인데 이 비율이 각각 20%대로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기후대응기금의 주요 재원인 탄소배출권 가격이 떨어지고 있어 정부 입장에서 지출을 효율화할 필요성이 높아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후대응기금은 탄소배출권 유상 할당분을 경매할 때 발생하는 수입을 주요 재원으로 삼는다. 그러나 지난해 탄소배출권 매각 수입은 목표치(4009억 원)의 21.3%에 불과했다. 한국거래소에서 2022년 2월 3만 5000원 수준이었던 탄소배출권 가격이 2년 새 9000원대까지 내려간 영향이 컸다. 이 때문에 기후대응기금 예산 규모는 지난해 2조 4867억 원에서 올해 2조 3918억 원으로 3.8% 줄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여당을 중심으로 교통·에너지·환경세 세입 중 기후대응기금에 들어오는 비중을 현행 7%에서 추가로 확대하고 전력산업기반기금·복권기금 등 정부 출연 추가 재원을 확보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확충한 재원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과 기후기술 기업에 집중 투입한다는 복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