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다시보기] 독일 낭만주의 미술과 중세적 정서

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낭만적(romantic)이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에서 감미롭고 감상적인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서양 미술에서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래 이 용어는 중세 음유시인들이 부른 서정시 로맨스(romance)에서 파생됐다. 구전문학의 특성상 형식의 구애를 받지 않고 상상과 연상을 자유롭게 표현한 로맨스는 중세 기사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따라서 서구 미술사에서 낭만적이라는 개념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중세 문화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미술 사조로서의 낭만주의는 19세기 전반기에 등장했다. 특히 프랑스혁명이 실패한 후 나폴레옹 제국의 등장과 왕정복고가 이뤄지던 시기 낭만주의 미술이 크게 성행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상상 속에서 대안의 세계를 꿈꿨다. 낭만주의는 이들에게 위안과 도피처를 제공하기 위해 등장했고 그 밑바탕에는 지나친 이성숭배 사상에 대한 반성과 낙관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회의가 깔려 있었다. 그래서 이국적 취향, 신비주의적 신화, 종교적 구원, 문학적 상상력 등이 낭만주의 미술의 주된 특성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은 유독 중세에 대한 향수와 종교적 특성이 강하게 내포된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 점은 당시 독일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 그 대표적인 작가가 카스파어 다피트 프리드리히다. 나폴레옹의 침략에 굴욕감을 느낀 예술가들은 분열된 독일의 정치적 상황을 한탄하며 민족주의와 낭만주의를 연계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이들이 주목했던 시기는 중세였다. 신성로마제국의 영광을 재연하고 기독교 정신의 회귀를 주창하던 독일 민족주의자들에게 중세 미술은 가장 게르만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프리드리히의 1807년 작 ‘눈 속의 고인돌’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풍경화 양식을 통해 표출한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척박한 겨울 산중에 앙상한 가지만 남긴 세 그루의 나무는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를 연상시키며 눈 덮인 고인돌은 예수가 부활한 돌무덤을 상징한다. 자연을 빗대어 작가의 내면세계와 정신성을 표현한 이 그림은 매우 낭만주의적이며 동시에 동양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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