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반대 없이’ 정년 폐지한 파타고니아

<2024 일자리 열차는 계속 달린다>
⑤파타고니아 코리아
2019년 '원웨어 마스터' 영입 과정서 폐지
"임금 차별 두는 임금피크제, 검토 안해"

파타고니아 코리아의 원웨어 트럭은 한옥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됐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비자들이 더 오랫동안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장에서 각종 수선 작업이 가능한 특수 장비와 기능이 탑재됐고, 지붕의 태양광 패널로 재봉기에 전원을 공급한다. /이하 사진=파타고니아 코리아

※편집자 주 -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중장년 고용 우수기업' 사례집을 통해 다양한 기업과 업종의 중장년 인력활용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각기 다른 업종에 속한, 조직문화도 각각 다른 기업들이 어떻게 계속고용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었습니다. 이미 산업 현장에는 각자의 체질에 맞춰 계속고용의 틀을 만들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 중인 기업들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 서울경제신문 라이프점프는 모범적인 중장년 고용 우수기업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우수 사례가 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2024 일자리 열차는 계속 달린다>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파타고니아는 친환경 경영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회사다. 소비자들에게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해 '옷을 사지 말라'고 권하기로 유명하다. 지난 2022년에는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와 가족 구성원들이 보유한 지분 전부를 비영리 단체에 양도하면서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회사의 또 다른 남다른 점은 '정년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 본사에선 창립년인 1973년부터 근무한 직원들을 만나볼 수 있을 정도다. 파타고니아 코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의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만난 정철 인사팀 부장은 "파타고니아 코리아 임직원 모두가 흔쾌히 동의해 지난 2019년 정년을 폐지했다"고 설명했다. 계기는 파타고니아의 '원웨어(Worn Wear) 마스터'인 김천식 차장의 입사다. 원웨어는 새 옷을 사기보다는 고쳐 입고 재활용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으로, 옷을 수선해줄뿐만 아니라 수선하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2015년 7월 도입됐고 2019년부터는 전국의 소비자들을 찾아가는 특별 수선 차량 '원웨어 트럭'을 운영 중이다. 파타고니아 코리아는 지난 2019년 당시 수선 경력 50여년, 나이 70세였던 김천식 차장을 원웨어 마스터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아예 사규의 정년퇴직 조항을 과감히 지웠다.




정 부장은 “정식 입사 이전부터 프리랜서로 원웨어 캠페인을 함께 해 오신 분이고 브랜드 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라며 "옷수선 분야의 최고 기술자인 만큼 계속 함께 일하고 싶어 정규직 채용을 검토하던 차에 아예 형식적인 사규도 고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은 물론이고 당시 파타고니아 코리아의 지사장도 찬성했다. 미국 본사에서도 정년을 지난 직원들이 여전히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만큼 파타고니아 코리아의 사규 변경에 대해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파타고니아 코리아는 임금피크제도 없다. "임금에 차별을 두는 제도가 저희 회사의 방향과는 맞지 않아서 검토조차 안 했다"는 설명이다. 근로자의 연령에 따라 급여 수준이나 업무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규정도 없다.


현재 파타고니아 코리아의 전체 직원 수는 54명(정규직 기준)으로, 법적 정년을 넘긴 이는 김 차장이 유일하다. 나머지 직원들 중 최고참들이 갓 50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정년 폐지의 수혜는 2030년 이후에나 본격화된다. 다만 정 부장은 "본인만 만족하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고, 나이 때문에 자리가 없어진다는 불안이 없다 보니 내부 사기 측면에서 엄청나게 큰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원웨어 마스터' 김천식 차장



1960년대 서울 종로에서 재단사로 첫 발을 뗀 김 차장은 재단 경력 30년, 수선 경력 20년의 전문가다. 국내에서 직접 양복점을 운영하기도, 일본에서 수선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파타고니아와는 지난 2015년 연을 맺었다. 옷을 수명을 늘려 불필요한 수요와 소비를 줄이려는 원웨어 캠페인에서 그는 기둥이나 다름없다.




가로수길 매장에서 만난 김 차장은 "매일 5~10벌 정도 수선한다"며 "보던 옷만 수선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디자인이 달라지고 더 좋은 원단으로 바뀌기 때문에 공부를 계속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쉬는 날에도 백화점에 가서 옷을 구경할 정도다. 그는 "50년 넘게 옷을 봤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천직인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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