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형 햄버거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웬디스가 제품 가격을 시간대별로 다르게 책정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꼼수 인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점심시간 등 수요가 몰릴 때 가격을 더 높여 받는 등 사실상 가격을 인상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으로 힘든 미국 소비자들의 여론이 악화되면서 미국 정치권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논란의 발단은 15일(현지 시간) 웬디스의 2023년 4분기 실적 발표였다. 커크 태너 웬디스 CEO는 내년 말까지 2000만 달러를 들여 모든 미국 내 매장에 디지털 메뉴판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이르면 내년부터 디지털 메뉴판을 통해 변동가격제(dynamic pricing)나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시간대별 메뉴 변경 등의 기능을 실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변동가격제는 같은 서비스나 제품이라도 시간이나 날짜·재고량 등에 따라 가격을 달리 책정하는 전략을 말한다. 호텔이나 항공권이 성수기에 비싸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한 X(옛 트위터) 이용자는 “패스트푸드 산업 역사상 가장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반발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웬디스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쉬운 일이라는 점을 웬디스만 모르는 듯하다”며 불매 의사를 밝혔다. 리서치 업체인 글로벌데이터의 디렉터 닐 손더스는 “공급량이 고정된 여행과 숙박 분야는 변동가격제가 일반적이지만 햄버거가 1분 동안 5달러였다가 다음 1분은 6달러로 오르내리면 소비자들이 화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웬디스의 발표는 고물가에 시달리는 미국 소비자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은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기업들이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거나 눈에 띄지 않게 인상을 단행한다는 비판 여론이 이미 높은 상황이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기업들의 탐욕(greed)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이라는 용어가 나오는가 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과자 봉지를 앞에 두고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은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웬디스의 이번 시도도 숨은 가격 인상의 한 사례로 봤다. 워런 의원은 “그저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라며“미국 가정은 이제 이런 식의 인플레이션에 그만 시달릴 때가 됐다”고 밝혔다.
사태가 악화되자 웬디스는 29일 “수요가 높을 때 가격을 높일 계획이 없다”며 “디지털 메뉴판은 한가한 시간에 고객에게 할인이나 더 나은 제안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 발 빼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변동가격제가 가격 인상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파노우시 레샤디 워체스터대 교수는 “세트 메뉴 등 품목을 섞어 가격을 매기면 인상 사실을 눈치채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대니얼 프로인트 교수는 “수요가 많을 때 가격을 올린다는 말과 한가한 시간에 할인을 제공할 방법을 찾는다는 말은 동일한 표현”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