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은 어디에…‘4대 궁궐’에 머문 K관광 [최수문 기자의 트래블로그]

‘궁궐의 도시’ 서울은 조선 왕조 5대 궁궐 보유
문화재청은 4대궁, 나머지 경희궁은 서울시 관리
K관광 정책 4대 궁궐에 집중…일반에게 오해 불러

서울 경희궁의 모습. 일부 전각만 복원됐고 전반적으로 쓸쓸한 분위기다.

문화재청이 지난 22일 2024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일반에 공개 했는 데 그 가운데 주요 프로그램으로 ‘K관광의 랜드마크인 4대궁의 역사와 문화를 활용할 수 있는 고객 맞춤형 체험·활용 콘텐츠 확대 운영’이 있었다. 목표에서 처럼 문화재청은 4대 궁궐을 활용한 K관광 콘텐츠를 늘리고 있다. 물론 바람직한 일이다. 여기서 4대 궁궐은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의미한다. 모두 서울에 위치한 조선 왕조의 궁궐이다.


다만 모두가 알다시피 실제로는 서울에는 총 5개의 궁궐이 있다. 문화재청의 업무계획에서 빠진 곳은 경희궁이다. 문화재청이 경희궁을 빼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경희궁은 현재 서울시 관할이다. 나머지 4대궁은 문화재청 관할이다. 궁궐 같은 문화재라면 당연히 문화재청이 맡는 게 옳다. 경희궁이 서울시 관할이 된 데에는 복잡한 역사가 있다고 한다.



경희궁 상황을 알리는 안내판. ‘조선 시대 5대 궁궐 중에 하나인 경희궁’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17세기 초에 건설됐으며 한때는 경복궁의 3분의 2나 되는 거대한 규모였던 경희궁은 조선 말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주요 전각들이 거의 모두 사라지는 비극을 겼었다. 대신 서울고등학교 등 일반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빈 땅은 서울시가 소유하게 됐다.


이후 서울고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드디어 1980년대 들어 복원이 시작됐지만 아쉽게도 작업은 숭전전·자정전·태령전 등 일부 전각에 그쳤다. 복원된 전각은 원래의 10분의 1도 안된다. 나머지 부지의 많은 부분은 서울시교육청, 국립기상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주택, 상가 등이 들어섰고 2000년대 초에 경희궁 복원은 사실상 중단됐다. 다른 궁궐 같은 ‘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현재 관리는 서울시 서울역사박물관이 맡고 있다. 반면 나머지 4대 궁궐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관리한다.



경복궁 전경. 지난해 광화문 월대가 복원되면서 보다 늠름한 모습이다.

4대 궁궐은 복원도 활발하다. 문화재청은 지난해만도 경복궁 광화문과 덕수궁 대한문의 월대를 각각 복원했다. 또 주요 전각으로 덕수궁 돈덕전, 경복궁 계조당 등을 복원했다. 이들 4대 궁에서는 모두 야간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특히 경복궁은 오는 2045년까지 원래 전각의 절반 가까이 복원하겠다는 목표다.



문화재청은 장기적으로 사진 위쪽 그림처럼 원래 전각들을 복원한다는 목표다. 아래 그림은 현재의 경복궁 모습이다.

이에 반해 경희궁은 그냥 방치된 수준이다. 복원된 전각의 숫자도 적어 30분이면 모두 둘러볼 정도다. 추가 복원은 중단된 상태다. 때문에 입장료를 받는 다른 4대 궁궐과는 달리, 경희궁 관람은 무료다. 때문에 경희궁 궁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시민들도 상당수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문화재청의 정책이 계속된다면 ‘궁궐의 도시’라는 서울은 그냥 4대 궁궐의 도시로 우리 국민들이나 외국인들에게 각인될 가능성이 있다. 문화재청의 홍보 노력이 오히려 왜곡을 부를 수 있다는 의미다. 4대 궁궐이나 5대 궁궐이나 뭐가 크게 다르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결국 국민들이 문화재 또는 국가유산을 대하는 자세다. 있는 것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면서 새로 만드는데 혈세를 투입하는 것도 문제다.


경희궁을 포함한 ‘5대궁’으로서 통합운영이 절실한 상황이다. 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칸막이가 여전한 게 아쉽다. 앞서 문화재청의 추진계획 발표장에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서울시와 계속 논의하고 있다. 보존뿐만 아니라 활용, 관리에서도 지속적으로 서울시와 지방자치단체와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지난해 8월 덕수궁 대한문에도 월대가 복원됐다.

그럼 서울시의 의사는 어떨까. 3·1절 연휴를 앞두고 서울시에서 홍보자료를 돌렸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은 서울의 역사적인 장소인 경희궁, 운현궁 등과 함께 가볼 만한 여행 코스를 소개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경희궁에 대해서 “도심 속에 있지만 고즈넉한 편안함이 있는 궁으로, 근대의 역사를 조용한 분위기에서 둘러볼 수 있다”, “방문객이 많지 않아 궁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천천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찾지 않아서 좋다는 말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