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첨단기술 수출통제 등 공급망 분리·배제 정책을 실시하는 미국을 강하게 비판하며 기술 자립화로 맞대응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의 승자와 관계없이 중미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면서도 대만을 자극해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국방비 확대에 나선 가운데 중국 역시 국방 예산 증가 추세를 이어가겠다고 예고했다. 이 같은 논의가 진행될 올해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4일 개막해 11일 폐막할 예정이다. 양회의 주요 행사였던 전인대 폐막일의 국무원 총리 내·외신 기자회견은 올해부터 열지 않기로 하며 ‘시진핑 1인 체제’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러우친젠 전인대 14기 2차회의 대변인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사전 기자회견에서 “공급망을 분리하거나 배제하고 진입장벽을 확대하는 등의 행위는 세계 과학기술의 발전을 방해하고 산업 발전을 손상시키며 세계의 발전 격차를 확대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자연스럽다”면서도 중국과의 디리스킹(위험 제거)에 나서고 첨단기술의 수출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을 향해 불편한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러우 대변인은 위성항법시스템을 예로 들며 “중국은 국제 협력을 통해 기술 공동 개발을 희망했지만 여러 이유로 교착 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자체 노력을 통해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방 진영의 기술 통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기술은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고, 기껏해야 시간문제”라며 과학기술 자립으로 맞서기 위해 입법으로 이를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러우 대변인은 “미국 대선은 미국 내정이고 우리는 이에 대한 입장이 없다”며 “누가 당선되든 중국은 미국이 중국과 함께 나아가 중미 관계를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마국 의원이 반중국 법안을 내고 중국을 겨냥한 반중국 언행을 하거나 심지어 대만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며 “이런 처사는 중국 내정을 난폭하게 간섭하고 양국의 정상적인 교류·협력을 방해한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4월 방첩법 개정으로 외국인과 외국 기업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방첩법은 불법행위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외국 기업과 외국인의 중국 투자, 일·생활의 안정감을 높였으며 정상적인 활동은 겨냥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게속해서 이 같은 주장을 반복해왔지만 외국 기업의 불안감은 갈수록 증폭됐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에 따르면 외국 기업의 중국 직접 투자액(FDI)은 330억 달러(약 44조 원)로, 2022년에 비해 81.6% 급감했다.
양회의 중요 의제인 국방비 증가에 대한 질문에 러우 대변인은 “미국 등 군사 대국에 비해 중국의 국방비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국가 재정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국민 1인당 또는 군인 1인당 국방비 등이 모두 낮은 편”이라고 답했다. 그는 “국방 지출의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하고 국방력과 경제력의 동시 증가를 촉진한다”며 올해도 국방 예산이 늘어날 것임을 사실상 예고했다.
올해 전인대에서는 폐막 총리 기자회견도 30여 년 만에 사라진다. 러우 대변인은 “올해 전인대 폐막 후 총리 기자회견을 개최하지 않는다”며 “특별한 상황이 없다면 이번 전인대 이후 몇 년 동안 총리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펑 총리가 1991년 처음 실시하고 1993년 주룽지 총리 시절 정례화된 총리 기자회견은 중국에서 국가 최고위급 책임자에게 직접 질문을 하는 기회여서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돼왔다. 하지만 총리 기자회견을 열지 않기로 함에 따라 총리의 위상이 저하되고 그만큼 시진핑 주석으로의 권력 집중이 강화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이날 오후 3시(현지 시각) 정협 개막식을 시작으로 양회의 막이 올랐으며 5일 전인대 개막식에서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 등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