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행동이 모든 언론사의 ‘가장 많이 읽힌 뉴스’ 목록을 점령한 지 3주째다. 시간순으로 기사를 훑어보며 깨달은 점이 있다. 상황이 장기화함에 따라 헤드라인에도, 온라인 댓글 창에도 나날이 ‘매운맛’ 표현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행동 첫날 ‘시름에 잠겼던’ 환자들은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조용히 자취를 감췄던 의사들은 길거리로 나와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고 소리를 지른다. 유튜브에서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의 ‘분노 폭발’ 영상이 몇 십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의료 현장은 폭풍 전야에서 혼란의 소용돌이로, 더 나아가 마비 내지 파국 상태에 빠졌다고 표현된다.
특히 박 차관의 ‘의새(의사에 대한 멸칭)’ 발음 논란은 의사 집단을 향한 혐오 표현에 불씨를 댕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음의 고의성 여부를 따지는 과정에서 해당 단어 자체가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생명력을 얻었다. 전공의 파업과 관련된 어떤 기사를 눌러봐도 댓글 창에서 ‘의새’라는 단어와 함께 수위 높은 조롱을 볼 수 있다.
혐오는 더 큰 혐오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며칠 사이 의료인 커뮤니티에서는 ‘어차피 악마화된 김에 정말 악마가 되겠다’며 자포자기식 울분을 드러내는 글이 빈번히 눈에 띄었다. 이 중 선동에 속은 국민들이 어리석다며 조롱하고 전공의 사직을 ‘방학’에 비유한 글 등은 실시간으로 퍼날라져 더 큰 분노를 불러왔다.
의정 갈등이 격화하는 사이 실언도 잇따랐다. 최근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반에서 20~30등이 의사를 하면 누가 진료를 받겠냐”고 말해 도마 위에 올랐고 일부 전공의들은 “내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 “의사직을 관두고 농사를 짓거나 타코야키 장사를 하려는 동기도 있다”등의 발언을 해 선민의식 논란에 휩싸였다.
이 같은 ‘비하 배틀’이 과연 무엇을 남겼는지 의문이 든다. 정부와 의사 집단, 국민이 격한 비난을 주고받는 사이 의료 개혁에 대한 실무적 토론은 뒷전으로 미뤄졌다. 언론 역시 이 과정에서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는 반성도 하게 된다. 뻔한 말이지만 의정 갈등 봉합을 위해서는 서로를 향한 존중과 경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