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규 한투운용 대표 “버핏式 가치투자 이젠 안 통해…테크시대 투자법 따로 있죠” [CEO&STORY]

■‘한국 ETF 아버지’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
고금리에도 증시 호황 '테크시대 전환'
가치투자로는 장기간 수익 지속 어려워
빅테크 상위 기업에 적립식 투자 유망
ETF 시장 130조 달하지만 경쟁 과열
기초지수·종목 다양화로 차별 꾀해야
밸류업, 주가만 끌어올리는 방향 안돼
과도한 상속세가 '韓증시 저평가' 핵심
대주주 스스로 기업가치 높이게 해야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 오승현 기자

“한국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입니다. 모든 운용사가 저마다 ETF를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도 거의 비슷합니다. ETF 시장이 자연스럽게 성장하면서 규모가 점차 커져야 하는데 지금은 과열 경쟁으로 운용사들이 시장을 억지로 키우고 있어요.”


여의도 일대에서 ‘ETF의 아버지’로 불리는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는 급격하게 몸집이 비대해지고 있는 ‘자식’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배 대표는 삼성자산운용에서 근무하던 2000년대 초반 국내시장에 처음으로 ETF를 소개했다. 관련 제도가 전무했던 시기에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증권제도과를 찾아 임종룡 과장(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김태현 사무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설득해 ETF 탄생을 이끌어낸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정부는 일본에서 먼저 ETF가 상장되고 시장 안정 기능이 있다는 평가를 접한 뒤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후 재경부와 한국거래소·자산운용사 관계자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가 출범해 1년 정도 머리를 맞댄 끝에 제도가 완성됐고 2002년 10월 국내 첫 ETF인 ‘코덱스(KODEX)200’이 상장됐다. ETF 도입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배 대표는 지난해 한국거래소가 개최하는 ‘글로벌 ETP 컨퍼런스’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도입 직후 한동안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던 ETF는 최근 자본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면서 펀드 시장의 핵심이 됐다. 2005년까지만 해도 6개 상품, 8000억 원 규모였던 ETF 시장은 최근 837개 상품, 130조 원 규모로 팽창했다.


특히 지난해 6월 순자산액 100조 원 달성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같은 해 10월 110조 원, 11월 120조 원을 연속해서 단숨에 넘더니 올해 2월 130조 원마저 돌파했다. 상품 출시 경쟁이 과열되자 거래소가 심사를 강화하며 제동을 걸 정도다.


배 대표가 걱정하는 것은 ETF 특성상 운용보다는 상품 개발과 마케팅으로 경쟁하면서 ‘제 살 깎아 먹기’식 치킨게임이 벌어지는 것이다. 배 대표는 “운용사들이 유사한 상품을 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똑같은 ETF를 수수료만 낮춰서 내는 경쟁은 상도의에 어긋날 수 있다”며 “같은 반도체 테마 ETF라도 기초지수를 다르게 하거나 종목 구성을 다양화하는 방식으로 운용사마다 차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 오승현 기자

최근 배 대표의 관심은 여타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뉴욕증시의 대표 지수인 나스닥에 쏠려 있었다.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으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다만 배 대표가 나스닥에 주목하는 것은 전 세계가 테크(Tech·기술) 시대로 완전히 전환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으로 대변되는 가치투자 방식은 제조업 시대에는 통할 수 있어도 지금과 같은 테크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배 대표는 “테크 시대에 가치투자만 강조하는 것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며 “가치투자로 일시적인 수익을 낼 수 있어도 장기간 지속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정책금리가 5.25~5.50%로 2001년 이후 2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데도 나스닥 등 증시가 호황인 이유 역시 시대 변화에서 찾았다. 통상 금리가 오르면 주식 등 위험자산의 가치는 하락하는데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배 대표는 “과거 테크 기업은 당장은 아니어도 나중에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봤기 때문에 성장주로 분류돼 금리가 오르면 펀딩이 어려웠다”며 “그런데 지금은 빅테크 기업들이 투자자보다 돈을 더 잘 벌어 펀딩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테크를 강조하는 배 대표가 2022년 한투운용으로 자리를 옮겨 ETF 브랜드를 ‘KINDEX’에서 ‘ACE’로 바꾼 뒤 가장 먼저 선보인 상품도 ‘ACE 글로벌반도체TOP4 Plus 솔라액티브(SOLACTIVE) ETF’다. 반도체 산업 분야를 메모리, 비메모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장비 업체로 나눠 부문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TSMC·엔비디아·ASML 등을 각각 20% 비중으로 담은 ETF다. 엔비디아가 독주한 영향으로 순자산액 1500억 원을 돌파한 데 이어 최근 1년간 80%에 가까운 수익률을 거두면서 반도체 ETF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달성했다.


배 대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스닥에 투자하는 것이고 그보다 수익률을 높이고 싶다면 빅테크 상위 7개 기업이나 글로벌 반도체 톱 4개 기업에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이라며 “개별 종목에 투자하는 것과 비교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엔비디아가 전 세계 AI 반도체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독주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배 대표는 “아무리 효율이 좋은 반도체가 새로 나오더라도 AI 생태계를 뒤집기는 힘들다”며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7조 달러 규모의 막대한 투자금을 모으겠다고 한 것도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7조 달러는 마이크로소프트(3조 달러)와 애플(2조 8000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많은 액수다.


나스닥 등 미국 증시 호황의 여파로 일본 주식시장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225 평균 주가(닛케이지수)도 사상 최초로 4만 엔을 돌파하는 등 긍정적 영향을 받고 있으나 국내 증시가 부진한 이유도 혁신 부재에서 찾았다. 배 대표는 “한국 기업 가운데 혁신적인 산업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반도체 하나 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니 서학개미들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했다.


정부도 한국 증시만 소외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다만 배 대표는 “주가만 끌어올리는 ‘프라이스업(price-up)’이 돼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기업가치가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가만 오른다면 결국에는 다시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투자자 손실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켜야만 기업 스스로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 대표는 “외국인투자가를 한국 시장에 끌어들이려면 대주주가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 환원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며 “현 상속·증여세가 과도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대주주는 주가 상승을 바라지 않는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상속 문제를 외면하고 기업이 알아서 가치를 높이라고 한다면 진짜 밸류업이 이뤄지기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뿐 아니라 주주까지 포함하도록 상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가 ‘추상적이고 선언적 규정에 그칠 수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만큼 관련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대주주 문제를 덮어두고서는 일본과 같은 주가 상승은 힘들다는 진단이다. 배 대표는 “일본 경제에는 재벌이 없고 가업 상속을 할 때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관계 불일치를 조정할 필요가 없다”며 “주가가 오르면 모두가 행복한 일본과 한국은 상황 자체가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주주니까 돈이 많으니 양보하라는 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배 대표는 개인 투자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현행 제도상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에서 30%를 반드시 안전자산(채권형 또는 채권혼합형)에 투자해야 한다. 배 대표는 20%를 채권에 넣고 남은 10%를 자사 상품인 ‘ACE 엔비디아 채권혼합 블룸버그 ETF’에 투자해 한도를 채웠다. 그리고 자산의 20%는 생애 주기에 맞춰 위험자산 비중을 조절하는 타깃데이트펀드(TDF)에 넣었다. 나머지 자산 대부분은 ‘ACE 미국빅테크TOP7 Plus ETF’ 등을 통해 기술주에 투자한다. 기술주가 아닌 일부 종목에서 손실이 났으나 전체로는 양호한 수익률이라고 한다.



He is…


△1961년 서울 △1980년 서울 보성고 △1985년 연세대 경제학 학사 △1987년 연세대 행정학 석사 △1989년 한국종합금융 입사 △1995년 SK증권 자산운용팀장 △2000년 삼성자산운용 코스닥팀장·ETF운용본부장 △2008년 삼성자산운용 ETF운용본부 상무 △2013년 삼성자산운용 패시브총괄 전무 △2017년 삼성자산운용 운용총괄 부사장 △2022년 2월~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사장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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