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가 전면 허용되면서 이용자들이 단기간에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의사 단체행동에 대한 대안으로 비대면 진료를 서둘러 허용하면서 진료비 결제나 진료기관 안내 등 시스템 체계 구축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안내된 전국 4500여 곳의 비대면 진료기관 명단에 일부 비대면 진료를 보지 않는 기관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이날 기자가 심평원 명단에 포함된 서울 용산구 A 내과의원에 비대면 진료를 문의하자 “병원으로 직접 내원하라”는 안내가 돌아왔다.
정부가 지난달 23일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하면서 해당 진료기관 명단을 심평원을 통해 공지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기관 명단은 희망 의료기관에서 참여·청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목록을 공개한 것”이라며 “의료기관의 상황에 따라 비대면 진료 실시 여부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의료 공백으로 비대면 진료 수요는 폭증하고 있지만 정작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또 한 번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셈이다.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전면 확대 후 첫 주말이었던 지난달 24~25일 진료 요청 건수는 일평균 1900건으로 이전 주말 대비 최대 2배가량 급증했다.
의원급 병원을 운영하는 개원의들은 오진으로 인한 의료 소송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정의학과·내과 등 진료를 보는 의사 B 씨는 “비대면 진료를 시작하면서 의료사고·소송 등 법적인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대면 진료 후 시일이 지나 새로운 증상을 가지고 전화해서 처방을 요청하면 잘못된 진단을 내릴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초진 환자에 대해서는 더욱 난색을 표했다. 의사 C 씨는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환자에게 비대면 처방해주는 것은 상관없지만 초진 환자는 감기 같은 경증 질환이라도 처방이 부담된다”면서 “소아과의 경우 아이들 몸무게는 10~20㎏에 불과하다. 그만큼 약을 섬세하게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의사들은 비대면 진료 후 진료비 결제와 관련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따로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비대면 진료비를 받는 공식 시스템이 없고 진료비 수령 방식에 대한 안내도 없어 기존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진료비 결제는 계좌 이체 등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플랫폼 이용에 수수료 부담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진료비 결제 가이드라인 부재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관리 체계 구축을 위한 공공플랫폼 구축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네 병원’인 의원급 병원들은 병원 근처 약국과 소위 ‘한 몸’으로 운영된다. 의사들은 입을 모아 비대면 진료 시 병원과 약국의 협력이 어려워지는 점에 대해 지적했다. 환자들은 비대면 진료 후 집 근처 약국에 처방받은 약이 없어 ‘약국 뺑뺑이’를 하는 실정이다.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하는 등 의료 환경이 급변하자 약사계에서는 만성 질환자를 대상으로 ‘처방전 리필제’ 시범사업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처방전 리필제는 환자가 의사로부터 받은 처방전을 재사용해 의약품을 처방받을 수 있는 제도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고혈압·당뇨 등 장기 질환자는 먹는 약이 항상 같은데 처방전 리필제를 통해 장기 질환자들이 같은 약을 받기 위해 몇 번씩 병원에 처방전 받으러 가는 수고를 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에게는 약을 1년치씩 장기 처방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장기 처방 후) 약 보관이 잘못되면 온도와 습도 등 영향으로 약이 변질될 우려가 크다”며 “처방전 리필제를 도입하면 환자가 하나의 처방전으로 약국에 가는 주기를 짧게 해 보관이 잘 된 약을 받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주치의 제도의 도입을 대안으로도 제시한다. 비대면 진료의 한계를 환자와 의사 간 주기적인 관계 형성을 이용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비대면 진료가 개방된 유럽 국가의 의사들이나 환자들이 비대면 진료 문제로 시달리지 않는 것도 주치의제가 확립돼 있기 때문”이라면서 “비대면 진료 전면 시행의 선행 과제는 환자와 의사 사이 활발한 정보 공유에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