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생색에 그친 PF 지원책

김민경 건설부동산부 기자



"사실상 1군 건설사들만 살리겠다는 거 아닌가요? 나머지 중견 건설사들은 한꺼번에 부도 나면 안되니까 정책자금 찔끔 주고 '이걸로 연명하다가 차근차근 무너져 달라'는 것 같아요. 정말, 돈 나올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최근 만난 중견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2008년 겪었던 리먼사태보다 지금이 체감상 더 힘들다고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 국토부가 몇 차례에 걸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지원 방안을 내놨음에도 실제 시장에서의 체감은 미미한 것이다.


중견 건설사들은 그간 불공정한 책임준공확약 공사를 잇따라 수주해왔다. 자본력이나 협상력이 1군 건설사 대비 상대적으로 열위한 만큼 리스크를 더 감수하면서라도 사업을 따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현재 건설사 신용도의 '폭풍의 눈'이 된 PF우발채무다. 계약기간 내 시공책임준공과 브리지론 이자지급 보증, PF대출에 대한 추가 지급보증 등을 건설사가 잇따라 짊어졌다. PF 대주단에게 사업 목표로 제시한 분양률에 미치지 못할 경우 할인분양 수수료와 트리거 수수료까지 떠안는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도 막대한 수익은 시행사가 다 가져갔다. 과거 대장동 개발 사업에서 시행사는 3000억 원을 벌어 논란이 됐지만 시공사 얘기는 아무데서도 나오지 않았던 이유다. 이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고 설상가상으로 공사비까지 가파르게 오르면서 건설사들의 보릿고개가 심화됐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PF 지원 방안은 신용도가 높고 잉여자금이 충분한 대형 건설사들이 주요 대상이다. 일례로 지난해 말 신설된 건설공제조합의 책임준공보증 상품을 보면 △회사채 BBB+등급 이상·시공순위 100위 이내 △시행사 토지비의 10% 이상 선투입 및 PF 특별약정 체결 등이 보증 요건으로 걸려 있다. 사실상 자금 시장에서 자력으로 채권 발행이 가능한 27개 건설사가 대상인 것이다. 그나마 중견 회사도 현금 확보가 가능한 신용보증기금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도 지원 규모가 지난해와 동일한 수준에 그쳤다. 이마저도 BB+등급 이하인 회사는 조달 한도가 150억 원에서 450억 원에 불과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미분양 사업장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PF보증도 토지비의 10%나 총사업비의 2% 중 큰 금액 이상을 선투입한 사업장이 대상이다. 우량 시공사의 경우 토지비의 5%나 총사업비의 1%로 요건이 완화된다. 중견 건설사의 경우 해당하는 사업장이 많지 않은데 결국 HUG 보증서가 없는 이들 사업장이 더더욱 자금난에 내몰릴 우려가 있다.


시장에서는 건설사에게만 과중한 부담이 돌아가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본력이 없는 시행사 대신 시공사가 모든 부담을 짊어지는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수탁사로 들어간 신탁사도 수수료만 회수하고 사업 리스크나 시행자의 의무를 모두 시공사에 전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함께 자재 수급 등으로 책준 기한이 지난 사업장의 채무 인수 부담을 덜어주고, 건설사가 채무인수로 떠안은 물류센터나 지식산업센터 등 비주택 사업장에 저리 정책자금 등 유동성을 지원해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중견 건설사들의 줄도산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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