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저성장 해법은 개혁·혁신…노동 유연성 덕에 ‘나홀로 성장’ 美 보라”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저성장 탈피 경제 해법은 명백, 정치적 합의로 실현해야
규제가 ‘기업가정신’ 꺾어, 혁신 막히면 정부에 기대게 돼
노동 개혁 시급…노동시간 유연화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고금리發 부실 리스크, 4월 총선 이후 정공법으로 풀어야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4%를 기록하며 25년 만에 일본에 역전됐다. 합계출산율 0.7명이 붕괴될 정도의 급격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잠재성장률도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활기를 잃은 우리 경제가 이대로 저성장의 늪에 빠져 ‘제로 성장’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6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인구구조가 불리해져도 혁신을 뒷받침할 구조 개혁이 이뤄진다면 경제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다”면서 “문제는 정치에 가로막혀 해법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미국 경제의 ‘나 홀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 유연성”이라며 “한국 경제가 악화 경로를 밟지 않기 위해서는 경직된 노동시장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또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실 리스크를 더 키우지 않으려면 정부가 4·10 총선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한계 기업 구조 조정에 본격 착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성장 타개를 위한 규제 완화와 구조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경제성장률이 올해도 2%대 초반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화한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껏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남이 만든 것을 빨리 학습해서 따라잡는 전략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온 만큼 더는 그 방식이 유효하지 않다. 이제 창의성을 발휘해 새로운 기술 수준으로 도약해야 할 때다. 그러려면 혁신이 가능한 경제·사회구조를 갖춰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그런 탈바꿈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양적 성장과 정부 개입, 캐치업 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에 진입한 것인가.


△경제가 발전하면 성장 속도는 어느 정도 둔화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앞으로 성장률이 더 낮아질 것이라고 지레 낙담할 필요는 없다. 세계 최강의 경제 선진국인 미국은 100년 넘게 연간 평균 2% 수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세를 유지해왔다. 우리처럼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일본도 노동 참여 인구 1인당 생산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불리한 인구구조가 반드시 제로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개혁과 혁신이 가능하다면 경제성장 속도를 높일 여지는 분명히 있다. 문제는 우리가 필요한 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개혁이 필요한가.


△저성장 탈피를 위한 경제학적 해법에 관한 주류 경제학자들의 컨센서스는 민간이 성장을 주도하기 위한 규제 혁신과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이 창의적 아이디어로 혁신하고 신기술을 개발해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면 된다. 특히 기업 경영을 활성화하기 위한 규제 완화가 중요하다. 해법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제도를 만들어낼 정치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저성장에서 벗어날지 여부는 정치인들에게 달렸다.


-기업 활성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규제 개혁은 무엇인가.


△단적인 예로 승차 공유 서비스 규제 개혁을 들 수 있다. 동남아 국가들에서도 허용되는 우버가 한국에서는 규제 대상이다. 규제를 피해 혁신을 시도한 ‘타다’도 법으로 가로막았다. 그런 환경에서 누가 혁신을 시도하겠는가.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리는 과정에서 사회적 긴장도가 높아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정부와 정치인들이 기업가 정신을 꺾어서는 안 된다. 혁신이 막히면 모두가 정부에 기대어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사업 기회만 노리게 된다. 그래서는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개혁에 실패할 경우 한국 경제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구조 개혁이 늦어질수록 경제 상황은 악화할 것이다. 특히 노동 개혁은 더 미뤄서는 안 된다. 미국 경제가 홀로 잘나가는 데는 노동시장 유연성이 분명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금 미국 경제를 이끄는 주요 기업들, 일명 ‘매그니피센트7’으로 불리는 빅테크들의 최근 뉴스를 보면 대규모 감원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신사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몸집을 줄여 다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관련 인력을 고용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 혁신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도 쉬운 부분부터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미국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필요에 따른 노동시간 유연화는 사회적으로 합의할 만한 수준 아니냐. 그런데도 일시적인 노동시간 증가를 문제 삼아 반대를 일삼으니 안타깝다. 이래서는 기업들이 혁신 시도조차 하기 힘들어진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동 유연성 제고를 위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노동생산성 제고가 저출산·저성장의 해법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가.


△저출산 자체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인구 감소 요인을 생산성으로 만회하면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은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노동 연령대를 확대하고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 인적 자본을 활용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육아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여성들이 생산성 높은 분야로 재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약적으로 좋아진 고령층의 건강 상태를 감안해 정년 연장도 필요하다. 아울러 기술력으로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하락을 떠받치는 방법이 있다. 첨단 기술인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이용하면 물리적으로 힘든 일이나 창의성을 발휘하는 일에서 고령자들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적극 모색하면 고령화된 인구구조로도 생산성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령화로 인해 장기 재정에도 비상이 걸렸다. 중장기적 재정 안정화 방안이 있겠는가.


△재정 문제 해법의 핵심은 연금 개혁이다. 지금의 국민연금은 가입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너무 크다. 인구 증가를 전제로 설계됐으니 인구가 줄어들면 급속도로 고갈될 수밖에 없고, 이는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 그것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재정 건전화 방안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연금 개혁에 손도 안 댄 이전 정부와 달리 현 정권은 이를 3대 개혁의 하나로 추진한다고 하니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올해 한국 경제가 직면한 최대 리스크는 무엇인가.


△금리 인하 시기가 늦춰지면서 고금리가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이미 그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PF가 부실화하고 한계로 내몰리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가계 부채 부담도 커졌다. 앞으로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부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면 몇몇 증권사와 저축은행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4월 총선 이후에는 정부가 이 문제를 정공법으로 풀어야 한다. 한계 기업이나 부동산 시장으로 잘못 흘러간 자금이 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옮겨가야 한다.


-기업 부채나 가계 부채의 부실화가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가.


△이대로 손을 놓고 부실을 더 키운다면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은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정도로 부실 규모가 큰 것은 아니다. 가계 부채도 지금은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소득 계층의 부채 비중이 큰 편이다. 가계 소비가 위축되기는 하겠지만 당장 대규모 파산에 따른 시스템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부실 문제 해결도 결국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정책금융 덕에 연명하는 한계 기업들이 워낙 많은 데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도 달려 있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구조 조정과 동시에 실직자들이 생산적인 일을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한국은행의 고민도 클 텐데.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금리 수준은 낮지만 미국과 달리 변동금리를 적용하는 비중이 높은 탓에 가계나 기업이 입는 고금리 타격이 상대적으로 크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를 미루는 와중에 한은이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펼치는 것은 물가나 글로벌 환경을 감안할 때 어렵다. 한은에 특단의 솔루션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리 차로 인한 환율 부작용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대외 자산이 채무보다 크고, 특히 은행의 단기 차입이 줄어 대규모 자금 유출 우려가 많이 줄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윤석열 정부가 할 일이 많아 보인다.


△정부가 큰 그림은 잘 그렸지만 애써 선정한 개혁 어젠다를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여건도 나쁘지만 정부가 미숙했던 측면도 있었다. 노동시간 유연화는 미리 원활하게 소통하고 설득했다면 그토록 저항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는 국민들에게 더 많이 호소하고, 너무 급하지 않게 접근해서 지지를 얻어내야 개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도 과도하게 정부 눈치를 살피며 의존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이해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야 하는데 지금은 노사문제에 관한 논의가 노동계와 정부 간에 진행된다. 정부는 슈퍼맨이 아니다. 민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 경쟁력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의 저력은 역동성이다. 그 힘 덕에 과거 위기를 극복하고 당면 문제들을 해결해왔다. 세계적인 한류의 인기와 반도체·자동차 산업의 성장도 그 힘의 발로다. 우리 경제가 가만히 앉아서 침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He is…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부속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캔자스대 조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금융감독원 자문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2년 한국경제학회에서 수여하는 청람학술상을 수상했다. 2010년 서울경제신문이 주관한 ‘미래를 이끌 50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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