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토부는 전세사기라는데… 경찰은 '증거 없음' 불송치 논란

관악구 다세대 주택서 수십억 원 전세사기
파해 세입자 대부분이 대학생·사회초년생
건물주, 불법개조 건축물 여부 고지 안해
국토부, 전세사기 피해자 등 인정 결정문
경찰 "형사상 사기 피해자 인정은 아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눈물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 관악구 소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수십억 원 규모의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건물 소유주로부터 1인당 최소 1억 원에 달하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은 국토교통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피의자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7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관악경찰서는 관악구 남현동 소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과 관련해 세입자가 건물 소유주 등을 상대로 제기한 고소 건에 대해 지난달 8일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는 피의자들이 해당 건물이 무단대수선(건축물의 기둥, 보, 내력벽, 주계단 등의 구조나 외부 형태를 수선·변경하거나 증설·해체하는 것), 일명 ‘방 쪼개기’로 불법개조된 위반건축물임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계약 당시 “대항력에 문제가 없고, 임대차 보증금을 떼일 염려도 없다”라며 피해자들을 안심시킨 뒤 임대차 계약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해당 건물 일부 호실에는 선순위 근저당권이 있었고, 선순위 임차보증금이 계약 당시 고지된 것과 달리 약 50억 원을 초과하는 상태였다. 해당 건물의 시세는 선순위 임차보증금을 한참 미달하는 금액이었다.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은 대부분 대학생 또는 사회초년생 직장인으로, 1인다 최소 1억 원 이상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빌라에는 40~50명의 세입자가 살고 있으며, 이들 모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총 피해 금액만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경찰에 집주인 등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재산이 없다”며 전세사기임을 부인하고 있다. 집주인 A씨는 “은행 대출금 및 모든 전세금 관리는 실소유주가 했고, 실소유주 때문에 나 또한 파산 선고를 해야 할 지경이다”라며 “세입자들이 경매가 개시되면 셀프낙찰을 해 전세금을 회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된다”고 전했다.


피해자는 국토교통부에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 신청을 접수했으며, 지난 1월 28일 전세사기피해자등 (제2조제4호다목)으로 인정받았다. 제2조제4호다목 전세사기피해자등 결정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확정일자를 받은 경우 △임대차 보증금이 3억원 이하인 경우 △다수의 임차인에게 임대차보증 반환채권의 변제를 받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 △ 임대인이 임차보증금 반환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의도가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등 4가지 조건 중 3번 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내려지는 것이다.


당시 해당 건물은 경·공매가 개시되지 않아 3번 조건을 충족할 수 없었지만,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하는 법원 경매 물건으로 나왔다. 이후 한 차례 유찰을 거쳐 오는 26일 오전 매각 결정을 앞두고 있다. 즉 3번 조건까지 충족이 돼 해당 건물의 세입자들은 국토교통부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8일 서울관악경찰서는 피해자가 집주인 등을 사기 혐의로 고발한 건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증거부족이 그 이유였다.


경찰의 수사결과 통지서에 따르면 피해자와 피의자가 각각 제출한 ‘중개대상물 확인 설명서’ 위반내용 항목에는 무단 대수선으로 인한 세대 수 증가 내용이, 건축물 항목에는 3억2400만 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중개대상물에 대한 중요 사실을 숨기거나 거짓으로 말했다고 주장하지만, 그에 대해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며 “고소인들이 계약 당시 무단 대수선과 선순위 근저당권의 존재에 대해 확인했거나 확인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전세사기피해자 결정통지서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라며 “피해자로 결정됐다는 것은 국토부에서 지원하는 피해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것일 뿐, 형사상의 사기 피해자로 인정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찰이 ‘전세사기가 아니다’라고 판단한 건에 대해 피해자들이 국토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받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냐는 질문에 해당 관계자는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은 맞지 않나”라며 “나라에서 이런 정책으로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니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인다”라고 전했다. 다만, 경찰은 다른 피해 건에 대해서는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 피해자는 법원에서 사기를 인정받고 임차권등기명령을 받기도 했다.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홍푸른 디센트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전세사기가 분명한데도 명의상 집주인은 ‘난 돈이 없으니 실소유주에게 돈을 돌려받으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잠적했다”며 “피해자들의 집은 곧 경매로 넘어가는데,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내쫒길 위기다. 이의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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