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가 취임 후 야심차게 추진하던 강남점 점포 리뉴얼이 내년 이후로 미뤄졌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경쟁 구도를 형성하겠다며 전담 조직까지 꾸려 리뉴얼 사업을 추진했지만, 자금 확보 등이 여의치 않자 계획이 잠정 중단된 것이다.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내부적으로 강남점 리뉴얼 작업을 연기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내부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당초 롯데백화점 강남점 내∙외부 인테리어는 물론 시설 개보수, 입점 브랜드 재구성 등 리모델링 수준의 공사를 진행하기로 논의했지만 최근 검토마저 멈춰 선 상태”라고 말했다.
롯데그룹이 2021년 11월 ‘순혈주의’를 깨고 신세계에서 영입한 정 대표는 ‘점포 리뉴얼’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경영컨설팅을 통해 관련 전략을 수립했다. 강남점을 비롯해 본점, 잠실점 등 주요 점포 8개를 고급화한다는 6대 핵심 전략이다. 당시 롯데쇼핑(023530) 백화점사업부는 실적 부진이 지속되며 유통 업계에서 입지가 약해져 체질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를 위해 정 대표는 지난해 초 강남점 리뉴얼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리고 작년 상반기 강남구청으로부터 관련 인허가까지 받았다. 하지만 롯데백화점 강남점 리뉴얼을 위한 자금 확보가 순탄치 않은데다, 잠실점 리뉴얼이 더욱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며 우선 순위에서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호텔롯데와 롯데지주(004990) 등 롯데그룹 내 지배구조상 상위 회사들은 5조 40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가 발생한 롯데건설 등 자금난에 시달리는 다른 계열사에 대규모 자금 지원을 하고 있어 롯데백화점에 추가 지원을 할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여기에 롯데컬처, 코리아세븐 등 다른 계열사들도 운영 자금 등을 확보하기 위해 모회사의 지원을 받아 유동화 시장에서 연이어 자금 조달을 하고 있다. 호텔롯데는 1월 말 3000억원의 공모 회사채를 찍은 후 지난 달 23일 1500억원 규모의 사모채를 발행했고 코리아세븐, 롯데컬처웍스도 각각 500억원, 2000억원어치의 사모채를 발행했다.
롯데백화점의 또 다른 관계자는 “강남점보다 면적이 두 배 가까이 넓은 잠실점의 본관 리뉴얼을 우선 진행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송파구청과 인허가 관련 협의를 진행중”이라면서 “잠실점 본관 리뉴얼은 올해 하반기 착공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이 1분기를 제외하고 계속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가운데 강남점 리뉴얼까지 지연되면서 정 대표는 올해 새롭게 분위기 반전을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 말 인사에서 승진해 사장 1년차를 맞은 정 대표에게 올해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86년 설립된 그랜드백화점 강남점이 모태인 롯데백화점 강남점은 소비의 핵심 상권에 위치해 있지만, 점포 규모가 작은 데다 노후화로 인해 인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나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장기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경우 지난해 국내 백화점 단일 점포 가운데 처음으로 연 매출 3조원을 돌파한 반면, 롯데백화점 강남점 매출은 2000억원 수준에 불과해 ‘정통 유통 명가’라는 타이틀에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