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돋보기]공정위, 플랫폼법 재추진…소통 부족 지적엔 모르쇠

한기정 위원장, 암참과 두 달 만 다시 만나
플랫폼법 필요성 피력…"폭넓은 의견수렴"
업계·취재진 질의에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

한기정(앞줄 가운데) 공정거래위원장이 7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암참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이 통과되면 수혜층이라고 볼 수 있는 중소기업과 소규모 사업자들이 오히려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그들과 더 적극적인 소통을 위한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김병주 바우어그룹아시아 한국대표)


“구체적인 방식을 포함해 이 문제에 대해 말씀드릴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의견 수렴을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7일(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알파벳(구글), 메타(페이스북), 아마존, 바이트댄스(틱톡) 등 글로벌 플랫폼 업체들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자사 우대행위 등을 금지하는 ‘디지털시장법’(DMA)을 전면 시행했습니다.


같은 날 우리나라에서도 유럽식 플랫폼법이 강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스타트업·소상공인·소비자의 부담을 야기하는 플랫폼 독과점 폐해를 효과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8일 과잉 규제로 논란을 빚은 플랫폼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더니, 한 달 만에 재차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관계자들과 만나 “플랫폼 시장은 변화 속도가 매우 빨라 공정위가 제재하더라도 이미 경쟁사가 퇴출당하고 독과점이 고착화하는 등 ‘사후약방문’식 뒷북 제재가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국내외 업계와 이해관계자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상 인사치레일 뿐 ‘어떻게’ 이행할런지에 대한 질문에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당장 현장에서는 한 위원장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기류가 감지됐습니다.


한 위원장은 향후 플랫폼법 추진 일정 등에 대한 거듭된 취재진의 물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이에 플랫폼 업계는 공정위가 시간을 벌며 눈치만 보다가 사전 지정제를 또다시 꺼내들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말 독점적 지위를 가진 대형 플랫폼 기업을 ‘지배적 사업자’로 사전 지정하고 반칙 행위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플랫폼법을 느닷없이 들고 나온 바 있습니다. 국내 산업계는 물론 미국 재계까지 나서 공개 반발하자, 그제서야 플랫폼법을 잠정 보류하겠다며 한발 물러났었습니다.


문제는 공정위가 플랫폼법 원점 재검토를 선언하고 숨고르기를 하는 동안 이렇다 할 설득 움직임 없이 무작정 입법을 재추진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그사이 플랫폼법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오히려 강해졌습니다. 염려했던대로 중국 플랫폼 업체의 국내 잠식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클리트 윌렘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부위원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공정위가 추진하는 플랫폼법에 대해 “미국 기업만 차별하는 불공정한 법이다. 이 법안이 현실화되면 무역확장법 301조(불공적 교역 관련 구제조항) 발동 등 양국 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만큼 한국 정부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도널트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플랫폼법의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면 이런 차별적 행위는 용인되기 어렵다”고 일갈했습니다. 사전 지정 대상 후보군으로 지목되는 애플, 구글, 메타 등은 이날 암참 행사에 불참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표출했습니다. 이들은 1월에 열린 공정위와 암참의 비공개 간담회에도 나타나지 않았었습니다.


플랫폼법에 대한 찬반 양측 모두 공정위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을 지적하는 모양새입니다. 공정위의 일방통행으로 정책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이유입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