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한마리, 양 두마리…셀 필요 없어요” 불면증 잡는 앱 등장[메디컬인사이드]

■ 이유진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장
수면장애 환자 5년새 29% 급증…60세 이상이 과반수 차지
불면증 환자 대상 디지털 치료기기 2종 허가…정식 처방 시작
인지행동치료법 모바일 앱으로 구현…치료 접근성 낮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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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외출 한번 하려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거든요. 3개월에 한 번 꼴로 돌아오는 진료 일정을 따라가기도 벅찬데, 매주 상담을 받는 건 엄두가 나질 않았죠. 스마트폰 앱으로 불면증을 치료한다니 신기한 경험입니다. ”


5년 넘게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서경자(가명·65) 씨는 작년 9월께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서 씨는 불과 몇 년 전까지 머리만 대면 잠이 들 정도로 불면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런데 평생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부터 밤에 침대에 누워도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천신만고 끝에 잠에 들어도 30분~1시간 간격으로 깼다. 퇴직 후 일상이 무력해진 탓이라 여겨 운동을 시작하고 이것저것 배우며 간신히 흐트러진 수면 패턴이 잡혀갈 때쯤 코로나19가 찾아왔고 증세가 도졌다. 불면증 기간이 길어질수록 매사에 흥미를 잃고 우울한 기분이 들어 수면유도제(졸피뎀)를 복용하기 시작한 지 4년 가까이 되어간다.



◇ 잠 못 드는 대한민국…수면장애 환자 100만 명 넘어

인간은 평균적으로 일생의 3분의 1을 자면서 보낸다. 수면은 면역 체계·대사 활동·호르몬 조절·세포 기능 등에 밀접하게 관여한다. 매일 7~8시간 가량 수면을 취하는 사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혈관이 이완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난다. 급속한 안구 운동이 나타나는 렘수면 단계에는 일과 중 쌓인 감정을 처리하기도 한다.


잠을 잘 자지 못하면 교감신경과 부교감의 균형이 깨져 인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2017년 서울대병원의 연구 결과 심한 수면무호흡증 환자가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은 정상인 대비 17배 높았고, 불면증 환자는 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 부족은 신체의 염증 반응을 높여 암 발생 위험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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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잠들지 못해 병원을 찾는 수면장애 환자는 급증하는 추세다. 수면장애는 불면증 외에도 수면 관련 호흡장애·과다수면증·일주기 리듬 수면장애·수면 관련 운동장애 등 수면과 관련된 여러 질환을 통칭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8년 85만5025명에서 2022년 109만8819명으로 28.5% 늘었다. 흔히 불면증이라고 하면 잠들기 힘든 증상만을 떠올린다. 지나치게 일찍 잠에서 깨거나 자다가 깬 이후 더 이상 잠이 들지 않는 것과 같이 수면 유지가 어렵고, 야간 수면시간이 부족해 낮동안 지나치게 졸리거나 피곤한 것도 불면증의 증상이다. 잠을 잘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데도 이러한 증상들이 일주일에 3번 이상 나타나면 불면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고령자는 불면증을 포함한 수면장애에 더욱 취약하다. 나이가 들수록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수면 중 깨는 횟수가 늘어나는 등 생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에 은퇴 등 일상의 큰 변화가 찾아오면서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수면장애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수면장애 환자 중 60세 이상이 과반수를 넘는다.



◇ 의사가 스마트폰앱 처방…병원 방문 없이 ‘불면증’ 인지행동치료 가능해져

이유진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약을 줄여보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는 서 씨에게 ‘솜즈’를 처방했다. ‘솜즈’는 만성 불면증 환자를 위한 표준치료법인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법(CBT-I)’을 모바일 앱으로 구현한 국내 1호 디지털 치료기기다. CBT-I는 수면시간을 처방해 수면 효율을 높이고 불면증을 만성화시키는 인지적 오류를 수정해 환자들이 가진 잘못된 수면 습관을 개선하는 비약물 치료법이다. 얼핏 스마트폰에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는 헬스케어 애플리케이션(앱)과 유사해 보이지만, 의사 처방에 의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유진(왼쪽)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 불면증 환자에게 디지털 치료기기 사용법을 설명 중이다. 사진 제공=서울대병원

현재 국내에서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허가된 디지털 치료기기는 ‘솜즈’와 ‘웰트아이’ 2종이다. 그 중 솜즈만 올 1월 서울대병원을 시작으로 삼성서울병원·고대안암병원·세브란스병원 등에서 처방되고 있다. 솜즈 처방을 받는 환자는 통상 6~9주간 수면습관 교육과 함께 행동중재, 피드백 등 맞춤형 치료를 받는다. 환자가 매일 솜즈 앱에 수면일기를 기록하고 주간 단위로 자신에 맞는 수면시간(잠자리에 누워있는 시간)을 의사로부터 처방 받는 방식이다. 병원에 일일이 내원하지 않아도 앱을 통해 실시간 수면 습관을 교육받거나 피드백을 통해 수면 관련 행동과 잘못된 생각 등을 교정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수면제 부작용 덜고 수면효율 높아져…“환자들도 긍정적 반응”

다만 아직 건강보험 체계에는 편입되지 않아 환자가 20만~25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비급여 검사비를 포함해 50만~60만 원 수준인 기존 CBT-I 비용의 절반 수준인 데다 내원 횟수를 줄일 수 있어 환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서씨의 경우 첫 처방 이후 2주만에 수면 효율이 60%에서 84% 로 향상됐다. 수면효율은 불면증의 심각도를 반영하는 지표다. 가령 침대에서 8시간을 보냈더라도 실제 잠을 잔 시간이 6시간이라면 수면효율은 75%라고 한다. 수면제 의존도가 낮아지면 궁극적으로 약물 중단이 가능할 것이란 희망도 생겼다.



‘솜즈’ 앱 화면을 통해 의사의 수면 처방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제공=서울대병원

이 교수는 “디지털 치료기기를 처음 처방 받는 고령 환자의 경우 사용법 설명과 모니터링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며 “스마트폰 보급률 등 디지털 기술 접근성이 높은 덕분인지 당초 우려와 달리 대다수 환자들이 쉽게 적응하고 치료 반응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국내 진료현장에서 첫 발을 뗀 디지털 치료기기는 허가와 별개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혁신의료기술평가 심사를 거쳐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이후 첫 처방이 나오기까지도 11개월이 걸렸다.



이유진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불면증 치료에 사용되는 디지털 치료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대병원

대다수 불면증 환자들이 찾는 1차의료기관에서는 빠르면 4월 이후 처방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솜즈는 2022년 서울대병원에서 시행된 임상을 통해 불면증 심각도를 효과적으로 낮추고 수면효율을 높이며 안전하다는 근거를 갖췄다. 이 교수는 “인지행동 치료는 불면증의 가장 좋은 치료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매주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는 번거로움 때문에 제한적으로 적용돼 왔다”며 “디지털 치료기기를 통해 더 많은 불면증 환자들이 하루빨리 수면제 부작용 없이 정밀화된 치료를 제공받게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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