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韓 비대면 진료 금지 OECD 유일…“美日처럼 원격의료 전면 허용을”

◆원격의료 허용 입법 추진과 해외 사례
원격의료 허용입법 추진했지만 의사 반대에 막혀
19·20대 국회서 좌초, 21대 국회도 5번만 논의
88년 이래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의료사고 전무
국민 건강권이 최우선, 규제해소 입법 서둘러야


# 2021년 8월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사회보장심의회가 의료부회를 열고 원격의료 전면 허용 방침을 밝혔다. 1971년 원격의료 실증 사업을 실시한 지 50년 만에 단행한 결단이었다. 이에 따라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가 초진부터 재진까지 제한 없이 이뤄지게 됐다.


# 한국에서도 2021년 9월 의사가 자택 등에 있는 환자를 원격으로 관찰·상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이 발의됐다. 이후 김성원·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신현영·최혜영 민주당 의원도 각각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료 규제를 푸는 의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여야는 그동안 접점을 찾지 못해 올 5월의 21대 국회 임기 종료를 앞두고 사실상 법안 폐기 수순에 들어섰다.


전 세계 주요국들이 원격의료의 빗장을 풀고 있으나 한국만 역주행하고 있다.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들은 이미 정보통신기기 등을 활용한 비대면 진료 행위를 전면 허용했다. 반면 한국은 관련 입법을 장기간 미루며 머뭇거리고 있다. 보건 정책 당국의 한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하지 않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사들이 오진 위험을 내세우며 원격의료 전면 허용을 반대하고 있는데 여태껏 국내에서 실시한 원격의료 시범사업에서 의료사고 발생은 한 건도 없었다”며 “비대면 진료의 정확성·안전성을 높여줄 정보기술(IT)도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의사들이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원격의료 선도국들에 관련 기술과 인재, 글로벌 서비스·인프라 시장을 선점 당하지 않으려면 미국·일본처럼 규제를 풀어 비대면 진료 등을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원격의료 산업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법적 근거 없어 시범 사업 쳇바퀴


우리 정부와 의료계에서 원격의료 추진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 시도는 서울대병원이 1988년 한국통신(현 KT)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원격 영상 진단 시범사업이었다. 멀리 떨어진 연천보건소의 엑스레이 영상 자료 판독을 도와주는 일종의 의사와 의사 간 원격 자문 테스트였다. 1994년에는 의사와 환자 간 원격 연결이 국내에서 처음 이뤄졌다. 울진 의료원이 경북의대병원·전남의대병원·전남 구례 보건의료원과 통신망을 통해 의사와 환자 간 소통 및 의사와 의사 간 자문하는 형식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실시됐다.


그러나 정작 원격의료를 전면적으로 실시할 법적 근거가 모호해 대부분 한시적 시범사업에 그쳤다. 특히 의료법이 2000년 1월 개정돼 응급환자 진료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행하도록 명시하면서 병원이 아닌 환자의 자택 등으로 화상통신을 연결해 진료하는 것이 금지됐다. 2002년 3월 ‘원격의료’ 도입을 명시하는 규정이 의료법에 처음 명문화됐으나 의사와 의사 간 원격 자문만을 허용하는 수준에 그쳤다.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 허용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정부는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기 위한 입법을 시도해왔으나 오진 위험성 등을 주장하는 의사들의 극렬한 반대에 막혀 법안의 국회 통과에 실패했다. 정부는 시범사업 형태로 비대면 진료를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인호(왼쪽 두 번째)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가 화상 진료 플랫폼을 이용해 몽골 현지 환자와 의료진에게 원격 협진 형태로 진료 상담을 하고 있다. 다만 국내 환자에겐 현행 의료법상 의사와 환자간 비대면진료는 원칙적으로는 금지돼 있어 이처럼 의사간 협진이나 해외 환자 비대면환자와 같은 방식으로 국내 의료진이 원격의료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아산병원

◇법원 판결도 오락가락…의료계 혼란 가중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행위의 합법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엇갈린 판결들은 혼란을 가중시켰다. 헌재는 2012년 3월 전원재판부 결정을 통해 의료법상 ‘직접 진찰’을 ‘대면 진료’ 의무로 해석했다. 대면 진료가 아닐 경우 의사가 진단서 등을 작성·교부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반면 대법원은 이듬해 4월 판결에서 의료법상 ‘직접 진찰’은 대면 진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처방전 발급 행위 일반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의사가 전화로 환자를 진료하고 처방전을 발급한 사안에 대해 전화 진찰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직접 진찰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정부는 원격의료의 한시적 확대 허용을 추진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감염병 예방·관리법 개정안도 2020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심각 단계’ 이상의 감염병 재난 위기 경보가 발령된 경우에는 의사가 유·무선 전화나 화상통신 등을 통해 병원 외부에 있는 환자를 관찰하고 진단·상담·처방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정부가 2023년 5월 코로나19 대유행 종료를 선언한 이후 관련 재난 위기 경보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함에 따라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도 자동으로 종료됐다.



국회에서 지난해 12월 20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는 모습. 21대 국회가 출범 한 후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여야 주요 의원들이 원격의료 규제를 개선하는 여러 건의 법안들을 2021년 9월 이후 발의했지만 여태껏 보건복지위 소위원회에서 해당 법안은 불과 다섯 차례의 회의에서만 간략히 다뤄진 후 사실상 심사 연기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사들 눈치 보는 여야


의사 단체들은 비대면 진료 전면 허용을 반대하며 여야의 원격의료 규제 개선 입법을 가로막고 있다. 의사 단체 등은 원격의료의 안정성 미흡(오진 및 의료사고 가능성), 개인정보 유출 우려, 타인 명의 부정 처방 우려, 수도권 및 대형병원 쏠림 심화 우려를 반대 명분으로 내세운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사가 환자를 대면 진료할 때에는 시진·청진·촉진·문진·타진을 종합해 상태를 살피고 병원 내 장비를 활용해 정밀 진단할 수 있지만 이런 것이 불가능한 비대면 진료는 부정확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고 전했다. 반면 원격의료 산업계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의 정확성을 뒷받침할 IT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의료계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오진 위험성이 적은) 만성질환 등에서부터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해간다면 의사들의 우려가 해소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입법권을 쥔 여야는 의사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2013년 12월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취지로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해 이듬해 법안을 발의했다. 그럼에도 여야가 결론을 내지 못해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해당 법안은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21대 국회 들어 일부 의원이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료 규제를 개선하는 법안들을 내놓았지만 2021년 첫 법안이 발의된 이후 현재까지 3년이 지나도록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불과 다섯 차례 논의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21대 국회에서 결론 내지 못할 경우 22대 국회 출범 후 법안을 재발의해 심의·결론을 내리기까지 수년간 시간이 허비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여야는 헌법상 국민 건강권 보장을 최우선하는 차원에서 가급적 21대 국회 임기 종료 전에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하는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일본 후지타보건대(FHU) 외과의사들이 싱가포르국립대병원(NUH)과 함께 싱가포르 현지에서 원격조종장치로 일본 가고야에 있는 로봇팔을 움직여 위 절제 수술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모니터를 통해 일본에서 원격으로 진행되는 수술 장면이 중계되고 있다. 사진 제공=NUH

◇커지는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보수적인 독일도 빗장 풀어


원격의료 서비스가 국내에서 규제에 묶여 있는 사이 해외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의료 제도에 대해 보수적인 접근을 해온 독일·일본마저 규제 빗장을 풀고 원격의료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의 지난해 12월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약 6130억 달러에 그쳤던 전 세계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2023년 1조 2040억 달러로 1조 달러를 넘어섰다. 2026년과 2028년의 시장 규모는 각각 2조 달러와 3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원격의료가 자국 건강보험 청구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초에 0.2%였으나 2023년 11월에는 5.1%까지 증가했다.


미국은 1996년 원격의료개발법 제정 등으로 원격의료 도입을 법제화했다. 이후 연방보건복지법령을 통해 원격의료 제공 기관의 범위와 제공 대상·서비스, 장비 규격, 비용 부담 등까지 세부적으로 규정하는 표준화를 통해 관련 서비스를 발전시켜왔다. 특히 원격의료인의 자격을 의사뿐 아니라 전문간호사·조산사·임상사회복지사 등에게도 부여해 국민들의 서비스 접근성을 높였다. 우리나라는 원격의료 행위를 의사(한의사·치과의사 포함)에게만 허용하고 있는데 미국처럼 허용 대상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원래 원격의료의 장벽이 높았다. 연방의사협회가 표준의사직업규정을 통해 ‘대면 진료 없는 원격진료를 금지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마저도 2015년 전자보건법을 제정해 원격 서비스를 비롯한 정보기술(IT) 적용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어 2018년에는 연방의사협회가 표준의사직업 규정을 개정해 원격의료 규제를 완화했다. 경증 질환 등에 대해서는 통신 매체를 통해 의사와 환자 간 상담·진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은 또 당초 법으로 금지했던 의약품 배송도 가능하도록 법을 고친 상태다.


일본은 1997년 후생성 고시를 통해 의사와 의사 간 원격의료 행위를 허용했다. 이어 2011년에는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2020년 4월에는 모든 질환에 대해 전화 및 온라인을 이용한 진료를 허용했다. 이듬해 8월에는 ‘온라인 진료 특례 조치의 항구화’ 방침을 공표해 코로나19 대유행이 종료된 뒤에도 원격의료가 전면 시행되도록 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종료 후 비대면 진료의 한시적 전면 허용 정책을 종료한 한국과 대비되는 풍경이다. 미국·독일·일본은 모두 고령 환자 증가, 지방 의료 시설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원격의료를 적극 제도화했다. 한국도 이런 나라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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