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정국에서 ‘강대강’ 대치를 벌여온 여야가 저출생·기후위기·소상공인·국민안전 등의 공약을 각각 당 10대 공약으로 채택했다. 인구절벽과 악화된 서민 경제 등 사회 위기에 대해 공통된 문제의식을 확인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공통 공약에 대해서는 신속히 입법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12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10대 공약에 따르면 양당은 모두 저출생 문제 해결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민의힘은 ‘저출생 대응 특별회계’를 신설하기로 했고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150만 원에서 210만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18세 자녀까지 월 20만 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또 남성 육아휴직을 강화하고 여성 경력단절도 방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양당이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국민의힘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금 규모를 두 배 확대하기로 했으며 확충된 재원을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산업 육성 등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3배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언급하지 않은 원전을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수단에 포함시켜 차이를 보였다.
서민·소상공인 지원 공약도 대동소이했다. 국민의힘은 소상공인 결제 대행 수수료 경감과 함께 온누리 상품권 발행을 5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민주당은 온누리상품권과 더불어 이재명 대표의 핵심 공약인 지역화폐까지 발행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피의자에 대한 처벌 강화 등 국민안전 분야의 공약 역시 여야 모두 10대 공약에 담았다.
전문가들은 여야의 공통 공약은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협치를 통해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양당의 입장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한쪽이 우세할 경우 나머지 당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저출생이나 고령화, 기후위기 등 우리나라가 맞닥뜨린 현안이 시급함은 물론 양당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총선 이후에 신속한 공약 처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야가 큰 차이점을 보인 분야는 부동산과 외교·사법 정책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 온 재개발·재건축 완화를 기조로 부동산 공약을 비중 있게 다뤘다. 노후화된 구도심을 미래형 도시 공간으로 재창조하겠다며 철도 상부 공간과 주변 부지를 통합 개발해 주거와 상업 공간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강변북로 등 전국 철도 및 주요 고속도로를 지하화하겠다고 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영등포를 찾아 “영등포 경부선 지하화를 통해 상권과 주거권, 생활권을 합쳐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부동산 공약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사례를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지난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기본주택 100만 가구를 총선 공약으로 다시 제시했다.
외교·사법 분야에 대해서 국민의힘은 10대 공약에 이를 포함하지 않았다. 반면 민주당은 10대 공약 중 3대 분야를 할애해 외교 기조 변화와 검찰 개혁을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민주당은 일본과 관계 회복에 주력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며 당당한 대일 외교를 하겠다고 밝혔고 검찰 개혁 카드도 다시 제시했다. 또 대통령 4년 중임제 및 5·18 정신 헌법 수록 등 개헌 사항도 10대 공약에 담았다.
여야가 야심 찬 공약들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담지 않아 ‘현실성’ 논란은 피해 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은 이날 발표한 공약 재원으로 예산 증가분과 기금 등으로 뭉뚱그려 언급했다. 민주당은 재원 조달 대책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