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만 매년 70만장 버려지는 침구…이렇게 살려냅니다[지구용]

제클린, 태광과 손잡고 5성급 호텔 침구·타올 재생
면 100%로 '무한순환'…비닐봉투 대체도 노린다

제클린이 제주도에서 수거 중인 침구와 타올들. /오늘 사진, 그래픽은 모두 제클린 제공.

버려지는 호텔 침구로 만든 반려동물용 방석과 담요(레미투미 이야기 다시 읽기)에 대해 앞서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2년 만에 더 강력한 사업모델을 발견했습니다. 제주에서 호텔 침구와 타올을 수거해 다양한 패브릭 제품으로 부활시키는 '제클린(홈페이지)'의 이야기입니다.


호텔 침구의 당당한 귀환

전세계 폐기물의 20%는 옷, 타올, 침구 같은 패브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클린이 위치한 제주도는 아시다시피 관광지. 숙박 사업자가 제주도에만 6521곳(2021년 기준)이고 객실 7만7877개에서 쓰는 침구는 378.6만장에 달합니다. 고급 숙박업소일수록 자주 새 침구로 교체(보통 3~5년 이내)하고, 아주 조그만 흠만 있어도 버리고요. 제주도에서 연간 70여만장의 침구 관련 폐기물이 나오는데 99%가 소각 처리되고 만다고 합니다. 타올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겁니다.




차승수 제클린 대표는 원래 제주도 숙박 사업자들의 침구를 수거해서 세탁하는 사업을 하다가 멀쩡한데 버려지는 물건들이 너무 많은 걸 보고,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세탁한 다음 취약계층에 기부도 해 보고, 베개솜 같은 걸 재생해서 재생솜 이불까지 만들어봤다고. 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재생솜 이불을 만드는 비용과 에너지 소모, 탄소배출이 너무 많아서(=소독·세탁·고온살균) 지구에 결코 좋지 않단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접으려던 차에 우연히 라디오에 출연해 이런 고민과 시도를 이야기했더니, 태광산업(특 : 폐섬유 자원순환에 관심이 많음) 관계자가 듣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런 우연이 겹쳐서 차 대표는 버려지는 침구를 선별·수거하고 세탁➡태광에서 재생사(실) 생산➡다시 제클린에서 재생사를 가져다 각종 패브릭 상품을 만드는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국내 최초의 모델이고 해외에도 비슷한 시스템을 갖춘 기업이 드물다고.



제클린과 태광의 협업 끝에 탄생한 수건과 양말, 파우치. 수건, 이불솜 등은 제클린 스마트스토어 구입 가능.

정말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지구용사들을 대신해 에디터가 몇 가지 검증용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면의 무한순환, 쓸 곳도 많고요

▶지구용: 옷도 그렇고 패브릭에 폴리에스테르 같은 플라스틱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재활용이 되나요?


▶차 대표님 : 그래서 저희는 5성급 호텔 침구만 가져다 재생합니다(ex.메종글래드제주). 5성급 호텔은 100% 순면 침구를 쓰니까요. 앞으로 더 좋은 기술이 나오면 혼방 섬유(면+폴리에스테르 등 섞인 섬유)도 재생해 쓸 수 있을 겁니다.


호텔 타올 같은 경우는 끄트머리의 마감 처리에 폴리에스테르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다 잘라내고 재생하고요.



차승수 제클린 대표

▶재생사로 패브릭 제품을 만들 때는 재생사만 100% 쓰시나요?


▶안타깝게도 그렇게는 못 합니다. 섬유를 재생할 때는 긁어내서 파쇄하고 잘라내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단사(짦은 섬유)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품을 단사로만 만들면 조직이 성글어지기 때문에, 단사인 재생사는 20%만 쓰고 나머지 80%는 초면(새 면화)을 습니다. 글로벌 리사이클 인증인 GRS 인증에서도 재생소재 비율이 31%를 넘으면 제품 강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단 이유로 인증을 안 해주고요. 그렇지만 앞으로 더 좋은 기술이 나오면 초면 비중을 70%, 50%로 낮출 수 있겠죠.


▶면 100%라면 계속 재활용이 가능하겠네요?


▶맞습니다. 폐페트병으로 폴리에스테르 원사를 만들어서 옷을 만들면 재활용을 못하잖아요(에디터 주 : 아직까지 폴리에스테르 옷을 분쇄하거나 녹여서 다시 섬유 제품을 만들 적절한 기술은 전세계적으로 없습니다). 옷을 만들어도 세탁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배출되고요. 그런데 면화는 어쨌거나 자연소재니까 그런 부담이 없죠.


폴리에스테르 다회용 장바구니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회용이지만 자원순환이 안 되니까 결국 폐기해야되는데, 우리 면화로 만든 장바구니(에코백같이 생겼지만 더 성글은)가 더 널리 쓰인다면 어떨까요? 여러번 쓰다 회수해서 다시 원료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목표 중 하나는 비닐봉투를 면 소재 봉투로 대체하는 겁니다. 그린피스가 2020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 235억장의 비닐봉투를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2030년부턴 정부 정책에 따라 상업용 비닐 봉투 사용이 금지되고요. 지금도 버려지고 있는 수천톤의 면화, 섬유로 쇼핑가방을 만들어서 비닐봉투를 대체하면 자원순환도 되고 상당히 좋을 것 같습니다.



호텔 침구를 잘라내고 파쇄해서 재생솜으로, 그리고 재생사로.

▶그렇지만 재생하는 과정에서 새 제품보단 비용이 많이 들겠죠?


▶저도 예전에는 재생하면 0, 새로 만들면 100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재생은 비용까지 생각하면 130이 될 수도 있더라고요. 특히 제클린은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가 아니라 한국에서 재생하고 만드니까 인건비가 올라갑니다. 인터넷엔 중국산 작은 에코백들이 천원에 팔리는데 말예요. 대신 우리는 메이드인 코리아라는 점, 그리고 시니어인력과 장애인을 고용한다는 점! 그리고 다행히 최근에는 재생이 새 제품 생산 대비 물 사용량, 탄소배출량이 적다는 데이터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호텔 어메니티도 무한순환되는 날까지

차 대표는 앞으로 더 많은 호텔과 숙박 사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재생 수거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침구나 타올 외에 제주도의 숙박 업계에서 버려지는 매트리스, 치약·비누 같은 어메니티까지도 재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 중.


그리고 훈훈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클린은 생산 시설을 다 갖춘 큰 회사가 아니다 보니 원료 조달은 제주에서, 파쇄는 창원에서, 원단 생산은 대구에서, 양말은 양주에서 만드는 식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각각의 작업을 맡아 줄 공장을 찾는 것도 큰일이었죠. 그런데 공장 사장님들이 예상보다 호의적이셨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기회를 잡아서 미래를 바꿔보고 싶었는데"란 마인드셨다고. 환경에 옳은 쪽으로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 사업도 수출도 어렵겠단 인식이 다들 있었던 겁니다. 버려지는 침구를 파쇄하고, 솜으로 만들어서 재생사를 뽑아내는 과정에 대해 듣다 보니 옛날옛적 종종 눈에 띄었던 '솜틀집'이 떠올랐습니다. 오래 쓴 목화솜 이불을 가져가면 묵은 솜을 헤치고 새 솜을 섞어서 다시 말아주던. 찾아보니까 지금도 솜틀집들이 있나 봅니다. 목화솜 이불 리폼을 했다는 후기들이 눈에 띄고요. 가진 물건을 오래오래 아껴쓰던 시절이 최고였단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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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돼 있습니다. 쉽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드는 지구 사랑법을 전해드려요. 제로웨이스트·동물권·플라스틱프리·비건·기후변화 등 다양한 소식을 e메일로 전해드릴게요. 구독 링크와 아카이브는→https://url.kr/use4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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