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D램용 전공정 장비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국산화 작업을 긴밀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 1위 D램 회사에 전공정 설비를 납품하면서 최첨단 반도체 장비 회사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의 반도체 장비 계열사 한화정밀기계는 1월 삼성전자에 원자층증착(ALD), 플라즈마강화화학기상증착(PECVD) 평가 장비를 처음으로 출하했다. 이 장비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의 최첨단 D램 연구개발(R&D) 라인에 배치된다. 회사와 삼성전자 간 전공정 장비 협력이 공개된 적은 처음이고, 한화정밀기계의 전공정 장비가 유력 칩 메이커 라인에 들어간 사실이 확인된 것 역시 처음이다.
이 장비가 당장 경기 평택·화성시 등에 위치한 삼성 D램 양산 라인에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삼성 반도체연구소에 납품됐다는 건 초기 퀄(승인) 테스트를 통과가 상당 부분 완료됐고, 양산 라인에 적용되기 위한 최종 평가까지 도달했음을 뜻한다. 통상 이 평가는 2~3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가 삼성에 납품한 ALD와 PECVD 장비는 반도체 제조 과정 중 ‘증착’ 공정에 활용되는 제품이다. 반도체 공정은 동그란 웨이퍼 위에 얇은 막을 쌓고, 빛으로 회로를 새긴 뒤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증착은 이 공정들 중 얇은 막을 쌓는 작업이다. 특히 ALD는 첨단 증착 기술로 손꼽힌다. 원자 단위의 알갱이들로 더 얇고 단단한 막을 형성할 수 있어 초미세 D램을 만들 때 필수 기술로 통하지만 기술 구현이 쉽지 않다.
삼성과 한화정밀기계의 협력은 해외 장비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전(前)공정 분야에서 토종 기업이 기술적 진전을 이뤄내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고난도 증착 분야의 경우 주성엔지니어링 등 국내 장비 회사들도 분전하고 있지만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네덜란드 ASM 등이 수십 년 간 쌓은 장비 제조 노하우로 득세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화의 전공정 장비 국산화로 국내 소재·부품·장비 인프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화정밀기계 입장에서 보면 삼성전자와의 협력이 회사의 판로 개척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D램 시장에서 40%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과 생산 능력을 보유한 회사다. 기술 난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후공정 장비를 주력으로 하던 한화정밀기계가 ‘퀀텀 점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향후 한화정밀기계가 또다른 반도체 ‘빅테크’와의 협력에 도전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잠재 고객사들의 반도체 양산 기술이 삼성전자 공정과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원천 기술과 제조 능력이 확보된 만큼 다양한 맞춤형 제품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한화정밀기계는 ALD·PECVD 분야 외에도 인공지능(AI) 반도체에서 각광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 하이브리드 본더 개발에 나서는 등 최첨단 반도체 장비 제품군을 늘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