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따던 할매들 땅콩 캐던 할매들. 우리도 랩을 해 계속해서 뱉을래. 난 연습해 랩을 매일 연습해.”
경북 칠곡의 한 시골 마을에 울려 퍼진 랩 구절이다.
노인 인구 천만 시대, 이른바 ‘슈퍼에이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랩은 더 이상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이 래퍼로 변신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칠곡군에는 평균 연령 85세의 ‘K할매 래퍼들’이 있다. 현재 ‘수니와칠공주’와 ‘보람할매연극단’, ‘우리는 청춘이다’ 등 다섯 팀의 할머니 랩 그룹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들은 대통령 연하장 글씨체로 알려진 ‘칠곡할매글꼴’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수니와칠공주는 지난해 10월 부산 엑스포 유치를 응원하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대한민국 할매 래퍼를 전 세계에 알렸고, 국내 최초로 ‘할매 래퍼 그룹 배틀’이라는 이색 행사도 개최했다. 최근 로이터 통신 등 외신 취재에 이어 일부 대기업 광고 출연 제안도 받으며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수니와칠공주 리더 박점순(85)씨는 “랩을 배우니 여든이 넘은 인생 황혼기에 처음으로 황금기를 맞는 것 같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우리들의 도전이 많은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칠곡군의 ‘보람할매연극단’ 마음만은 젊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랩에 도전했다.
대구 출신 래퍼 ‘탐쓴’이 한 달에 다섯 차례씩 마을회관을 찾아 할머니들에게 랩을 가르쳤고, 성인문해강사로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던 황인정씨도 지도를 맡았다. 손주들은 할머니들의 가정 교사가 되어 랩 스킬을 알려줬다.
10개월 간의 땀나는 노력과 주변 도움으로 할머니들은 희망과 용기를 담은 4곡의 랩을 완성해 ‘1080 힙합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그들은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숨겨진 끼를 마음껏 발산해 200여 명의 관객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정송자(79) 할머니는 “며느리도 못 하는 랩을 내가 정말로 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손주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월 ‘K-할매 콘텐츠’ 확산을 위해 대한노인회와 칠곡군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대한노인회는 로이터, 중국 CCTV 등 세계 주요 외신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칠곡 할머니의 활동을 ‘K-할매 콘텐츠’라고 정했다.
대한노인회와 칠곡군은 할머니들의 활동 현황과 성과를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권장하기 위해 전국 노인지회에 전파하고 공동으로 노년층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