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와 관련해 ‘자율 배상 시 제재 감경’이라는 당근책을 제시했지만 은행권에서는 ‘눈치 보기’가 한창이다. 시장에서는 우리은행이 판매액이 가장 적어 가장 신속하게 배상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대로 판매액이 압도적으로 많은 KB국민은행의 선제 결정을 기다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금융 당국은 반복되는 금융투자상품 손실 사태를 막기 위해 아예 설계 단계부터 적합한 소비자군을 고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ELS 손실을 자율 배상하는 금융사에 징계 및 과징금 감경 혜택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선뜻 나서는 은행들이 없다. 다만 은행들의 홍콩H지수 ELS 판매액이 총 15조 9000억 원가량으로 최대 8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는 만큼 다음 달 금감원의 대표 사례 분쟁조정위원회를 앞두고 자율 배상안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판매액이 가장 적은 우리은행이 첫발을 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은행의 판매액은 400억 원 수준으로 조 원 단위로 판매한 다른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사례 검토나 방안 마련 등 절차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될 수 있어 의사 결정도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판매 규모가 가장 큰 국민은행이 먼저 자율 배상에 나설 것이라는 분위기도 있다. 국민은행은 15조 9000억 원 중 절반이 넘는 8조 원어치를 팔았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판매액이 적은 은행이 먼저 자율 배상에 나설 경우 배상 수준에 따라 국민은행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부담이 가장 큰 국민은행이 먼저 결정을 내려주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NH농협은행이 선두에 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농협은행은 외국인 주주 지분이 대부분인 다른 시중은행과 달리 농협중앙회가 100% 지분을 갖고 있어 ‘배임’ 우려가 덜하다는 이유에서다. 농협은행은 특수은행으로서 다른 시중은행보다 정부의 입김을 강하게 받아왔다는 점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는다.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은 투자자 책임을 반영한 금융 당국의 배상 기준안을 규탄하며 ‘전액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홍콩H지수 ELS 피해자 모임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농협 본점 앞에서 3차 집회를 열고 “피해자들과의 소통 과정 없이 마련된 배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계약 원천 무효와 일괄 100% 배상을 촉구했다.
금융위원회는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규제 검토에 착수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달 13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홍콩H지수 ELS 사태와 관련해 “금융투자상품 제조사와 판매사들은 상품 설계 단계부터 해당 상품의 적합한 소비자군을 따져봐야 한다”며 “불완전판매 방지와 관련해 조금 더 실효성 높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