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기준에 기소 위험까지”…70년 배임 바라보는 우려의 눈길[안현덕 전문기자의 LawStory]

서울경제·법무법인 세종 설문조사에서
10명 中 7명 ‘기업 예측가능성 떨어져”
사법 리스크·법률 비용 증가에도 영향
모호한 개념 등 70%가 法 개정 필요해
그동안 개정 단 한번…환율단위만 변화


“현행 법 체계에서는 배임죄의 구성 요건이 모호하고 불분명해 경영 성과가 저조할 경우 경영진이나 책임자는 항상 배임죄로 기소될 위험이 있습니다.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는 만큼 형법상 배임죄와 관련한 조항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세종이 기업 사내 변호사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나온 답변이다. 이들은 설문조사에서 배임이 기업이 신속한 경영 판단을 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7명(68%)가량이 ‘배임이 기업의 경영 판단이나 추진에 있어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고 답할 정도다. 반면 ‘그렇지 않다’거나 ‘매우 그렇지 않다’는 32%에 그쳤다.


‘검찰·경찰 등 사정 기관의 배임죄 적용이 회사 사법 리스크 및 법률 비용 증가에 영향을 주고 있으냐’는 질문에서도 70%가 ‘그렇다(매우 그렇다 포함)’도 응답했다. 특히 응답자 가운데 35명(70%)가 배임에 대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응답자(복수 응답) 중 62.7%가 바뀌어야 할 부분으로 ‘업무에 위배, 이익 취득 등 모호한 개념의 명확화’를 꼽았다.


한 응답자는 개정이 필요한 이유(주관식)에 대해 “(범죄) 구성 요건이 포괄적이고, 광범위해 배임 여부에 대한 다툼의 소지가 크다”며 “수사는 물론 최종 법원의 판단 시까지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고 답했다. 또 다른 응답자도 “현행 형법상 배임죄는 위태범으로 구성 요건이 다소 포괄적인 측면이 있어 기업의 자율적인 의사 결정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며 의견을 같이 했다. 위태범이란 법이 보호하려는 이익(법익)에 대한 위험 상태를 야기하는 것만으로 구성 요건이 충족되는 범죄를 뜻한다. 한 응답자는 “기업가들이 경영 과정에서 판단을 할 경우 해당 조항 때문에 적극적 투자 등에 부담을 갖게 돼 기업 활동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며 “경영진을 상대로 한 주주들의 부당한 소송 제기도 잦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법적 해석의 모호함에도 개정 작업은 제정·시행된 1953년 9월 18일 이후 단 1 차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1995년 12월 19일 한 차례 법률 조항이 바뀌었으나 핵심 내용은 환율 단위 뿐이었다. 당시 형법 제355조(횡령, 배임)의 경우 기존 벌금 단위를 5만환에서 1500만원으로 바꿨다. 업무상 횡령·배임이 명시된 356조도 벌금 금액만 5만환에서 3000만원으로 변경하는 법 개정이 이뤄졌다. 정갑윤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015년 8월 배임죄에 대한 규정을 ‘고의성’ 혹은 ‘목적성’의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끝내 국회 문턱은 넘지 못했다. 배임이 형법상 조항으로 제정·시행된 지 70년이 흐르고, 해마다 관련 사건이 4000~5000건 발생하고 있지만, 환율 등에 대해 단 한 차례 개정이 이뤄졌을 뿐, 논란이 되고 있는 범죄 구성 요건 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대검찰청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한 ‘분기별 범죄동향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발생한 배임 사건은 4295건에 이른다. 2015년(5843건) 이후 다소 감소하고 있기는 하지만, 해마다 4000건 이상의 배임 사건이 생기고 있다. 하루 11.76건 꼴이다. 지난해에도 3분기까지 3300건의 배임 사건이 발생했다.


다만 배임죄를 폐지하는 데는 반대 의견이 두드러졌다. 응답자(무응답 1명 제외) 가운데 71.4%가 ‘배임죄를 폐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동일 사건을 사기 혐의로 처벌하는 미국처럼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8.6% 뿐이었다.


한 응답자는 배임죄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사기 혐의는 기망 행위를 요건으로 하고, 배임은 불법 이득 의사를 요건으로 해 (다르기 때문에) 기업 임직원의 배임 행위에 대한 처벌을 필요하다”며 “기업의 활동 등에 부패를 예방하는 것이 국가 청렴도와 같은 경쟁력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존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응답자도 “주주 참여, 시장 감시 등의 장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계열회사가 많은 대기업 위주의 시장 구조상 배임죄를 폐지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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