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울프팩’ 전략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해군력은 영국에 비해 열세였다. 반격 카드는 1차 세계대전 때도 활약했던 잠수함 ‘유보트’였다. 유보트는 대서양에 진을 치고 미국의 식량·연료·군수 지원품이 영국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수송선들을 침몰시켰다. 개전 초반 유보트는 단독 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다 영국군이 상선을 한데 모아 수송선단을 만들고 구축함이 호위하도록 하자 나중에는 잠수정단의 지휘를 받아 여러 척의 유보트가 집단 공격하는 ‘울프팩(wolf pack·늑대 무리)’ 전략을 구사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훗날 회고록에서 “나를 정말 두렵게 한 단 한 가지는 유보트였다”고 했을 정도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이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선언에 편승해 ‘울프팩’ 전략으로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영국계 시티오브런던 등 5개 행동주의 펀드는 연합 전선을 형성해 삼성물산에 총 1조 2364억 원어치의 자사주 매입과 현금 배당을 요구했다가 15일 주총 표 대결에서 패배했다. 이들이 제시한 주주 환원액은 올해 삼성물산의 잉여현금흐름(사업 수익 중 세금·영업비용·설비투자액 등을 제외한 현금)보다 많은 액수다. KB·신한 등 7개 금융지주사와 삼양그룹·현대엘리베이터 등도 울프팩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증시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인색한 배당 정책이나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을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투기 자본의 지나친 요구에 휘둘리면 미래 투자 재원이 고갈되면서 기업 성장과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최근 일본 주가가 34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근본 이유는 기업 실적이 호전되고 반도체 등 미래 성장 동력이 발굴되고 있는 데 있다. 또 우리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을 부담해야 하는데 해외 선진국과 달리 차등의결권·포이즌필 등과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아 자사주 매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상속세율 인하, 경영권 방어 장치 마련 등 제도적 보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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