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가 20회 차를 종료했다. 윤 대통령은 서울(3회)과 수도권(8회), 부산·인천·대구·창원·울산·대전·서산·춘천·무안 등 전국을 돌며 2040명에 이르는 참석자들을 직접 만나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재건축에서 반도체, 자본시장, 단통법,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 수도권 교통 격차, 의료 개혁, 늘봄학교, 소상공인, 청년의 삶, 지방의 개발 사업까지 민생 이슈 대부분을 챙겼다. 윤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공약이 어떤 단계까지 진행 중이고 앞으로 정부가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이야기했다. 관가에서 민생토론회 준비가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야당에서 관권 선거라며 날 선 비판을 내놓는 것 역시 정책 이슈를 주도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민생토론회에 한 가지 주제가 빠졌다. 바로 ‘저출생’이다. 앞선 토론회에서 청년의 더 나은 삶, 늘봄학교를 통한 국가 돌봄 체계 강화, 지방 어린이병원 설치 등을 밝힌 것도 넓게 보면 저출생 이야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제대로 저출생 문패를 걸고 실제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 출산을 준비 중인 신혼부부, 난임 부부,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 대학생, 어린이집 보육 교사, 기업 관계자, 석학 등 당사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지는 못했다.
물론 윤 대통령 앞에서 토론을 한다고 도깨비방망이 두드리듯 뚝딱 저출생 해법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결혼은커녕 연애도 하지 않는 요즘 Z세대의 생각은 무엇인지, 기업과 근로자가 모두 만족할 묘안은 없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불도저’로 불리던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위촉하며 특단의 대책을 예고한 것은 기대를 모으는 부분이다. 다만 부임 한 달이 지났지만 주목할 만한 목소리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총선 국면에 정쟁만 일삼는 여야의 모습에서도 ‘2023년 합계출산율 0.72명’이라는 숫자는 보이지 않는다. 4·10 총선 정당정책을 보면 여당은 제1공약으로 ‘인구부 신설’ ‘아빠 출산휴가 한 달 의무화’ 등을 내걸었다. 야당은 제2공약으로 저출생 해결을 약속했다. ‘신혼부부 무이자 1억 원 대출’ ‘18세까지 월 20만 원 아동수당 지급’ 등이 골자다. 하지만 공약은 공약(空約)일 뿐 여야는 연일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과 같은 불필요한 잡음만 일으키고 있다. 상대국의 아그레망까지 받은 대사에게 ‘해외 도주·도피’ 프레임을 씌워 공세를 퍼붓는 모습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대통령실과 여야가 합심해 인구정책 총괄 부처 신설부터 결단하면 어떨까. 정부조직법 개정에서부터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내 공론화하고 유연근무제 도입 등 특단의 조치를 연중 캠페인으로 진행하자. 20여 일 남은 선거기간 저출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중도층 표심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