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가 일본에 반도체 첨단 패키징 설비를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SMC가 자국이 아닌 해외에 첨단 패키징 라인을 설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 시장에서 ‘잃어버린 30년’을 보냈던 일본이 TSMC의 손을 잡고 부활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현지 시간) 로이터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TSMC가 대만에만 있는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 생산라인을 일본에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도체 패키징은 ‘후공정’으로도 불린다. 미세 회로 공정을 마친 실리콘웨이퍼를 칩 모양으로 자르거나 오염 방지막을 씌우는 작업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패키징 공정은 단순히 이 작업에서 끝나지 않는다. 회로 미세화 작업이 한계에 다다르고 연산해야 할 데이터마저 폭증하자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마치 하나의 칩처럼 결합하는 공정이 각광받고 있다.
TSMC의 CoWoS 역시 기판 위에 다양한 칩을 결합하는 기술이다. TSMC는 2012년 처음으로 CoWoS를 도입한 뒤 엔비디아·AMD와 같은 거대 칩 고객사의 선택을 받으며 업계 최고의 공정 노하우를 확보했다. 이미 TSMC는 5개의 첨단 패키징 설비를 대만에서 ‘풀가동’하고 있고 올해 이 공정에만 최대 32억 달러(약 4조 2000억 원)를 쏟아붓기로 결정했다.
다만 대만이 아닌 해외에 패키징 설비를 건립하는 것은 이번 사례가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TSMC가 해외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일본에 패키징 설비를 건립하는 것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TSMC가 일본을 선택한 배경으로 첨단 패키징 소재·부품·장비 생태계와의 수월한 협력을 꼽고 있다. 일본에는 아지노모토·이비덴 등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판 업체와 신카와·디스코 등 우수한 후공정 장비 회사들이 몰려 있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TSMC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TSMC는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 86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제1공장을 지난달 24일 개소했다. 일본 정부는 구마모토 1공장 설비투자액의 절반에 가까운 4760억 엔(약 4조 2000억 원)의 보조금을 제공했다. 적극적인 규제 해소로 당초 계획보다 3년이나 앞당겨 가동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TSMC의 패키징 설비 건립에도 지원금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계획이 실행되면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에는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약점으로 지적받는 칩 제조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 TSMC를 자국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주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