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단돈 900원”…토종패션 넘버원 노리는 ‘야구덕후’ [CEO STORY]

■최준호 패션그룹형지 총괄부회장 인터뷰
◇사실상 월급 자진반납한 '오너 2세'
3개 직함 가졌지만 배당금·법카도 없어
1만2000여 직원들 책임경영 의지 표명
"직관하다 스포츠 굿즈 성공 엿봤죠"
◇토종 패션업계 '1등 기업'이 목표
AI 도입해 재고 관리…실적개선 이끌어
스포츠 상품화·워크웨어 등 신사업 주력
전국 2300여 매장 찾아 점주와 스킨십도

최준호 패션그룹 형지 CEO가 14일 인천 연수구 형지글로벌 패션복합센터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

“월급 900원.”


패션그룹형지의 최준호 총괄부회장이 지난해 1월부터 14개월간 받은 급여 명세서에 찍힌 금액이다. 창업자 최병오 회장의 장남인 최 부회장은 2021년 5월 까스텔바작(308100) 대표에 오른 뒤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월급을 사실상 자진 반납하고 있다. 따로 나오는 배당금도, 법인 카드도 없다. 개인 카드를 사용하며 업무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한다. 패션그룹형지 총괄부회장, 형지엘리트(093240) 사장, 까스텔바작 대표이사 사장 등 3개의 직함을 갖고 있지만 월급은 최저 ‘시급’의 10분의 1 수준이다.


19일 서울경제신문과 인천 연수구 송도동 형지글로벌 패션복합센터에서 만난 최 부회장은 “1만 2000명에 달하는 임직원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월급 900원을 받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반드시 실적 개선을 이뤄내겠다는 최 부회장의 의지 표명이기도 하다. 패션그룹형지는 ‘동대문 신화’로 불리는 최 회장이 1982년 광장시장에서 1평(3.3㎡) 규모의 크라운사로 시작해 1996년 여성 캐주얼 브랜드 크로커다일레이디를 론칭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2005년에는 샤트렌·올리비아하슬러·라젤로 등을 선보이며 국내 대표 여성 의류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뒤 창립 32년 만인 2014년 매출 1조 원 신화를 달성했다.


그러나 공격적인 사업 확장으로 부침을 겪으면서 주요 계열사들이 적자로 전환했다. 최 부회장은 2011년 패션그룹형지 구매 생산 부문에 입사한 뒤 10년 후 골프웨어 브랜드 까스텔바작 대표이사와 패션그룹형지 사장을 맡으며 실적 개선을 꾀했다. 비용을 효율화하는 한편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덕분에 까스텔바작은 2022년 61억 원 영업 적자에서 지난해 9억 원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패션그룹형지 역시 2022년 영업이익 122억 원에서 지난해 283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132% 신장했고 형지엘리트는 지난해 하반기 영업이익 3억 8000만 원을 올리며 흑자 전환했다.


최 부회장은 경영 효율화를 위해 인공지능(AI)을 도입해 재고 예측의 정확도를 높였다. 2021년부터 까스텔바작은 세종대와 ‘AI 형지’ 프로젝트를 개발해 관련 기술을 상품 기획 및 마케팅 영역에 활용해 재고를 소진하고 있다. 그는 “패션 업계에서 가장 힘든 문제가 재고 관리”라며 “기존에는 신상품을 많이 만들어 팔고 재고는 아웃렛에서 원가를 포기하고 팔았지만 최근에는 AI를 도입해 스테디셀러 아이템과 신규 아이템을 적절히 배분해 판매하며 적중률을 높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AI 도입 이후 패션그룹형지는 이익률도 좋아졌을 뿐 아니라 재고 소진율도 높아졌다.


최 부회장의 주도로 신사업을 추진한 것도 실적 개선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는 스포츠 상품화 사업과 작업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저출생 및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돈을 쓰고 단 한 개를 사더라도 만족할 수 있는 ‘가심비’ 소비가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형지 본사가 서울 역삼동에 위치해 있을 당시 매일같이 퇴근 후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좋아하는 팀의 야구 경기를 ‘직관(직접 관람)’하며 야구 관련 사업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최 부회장은 “야구팬들은 매년 새로운 디자인이 바뀌어 출시되는 굿즈 상품들을 구입할 때 가격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며 “‘팬심’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 일본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 스포츠 상품화 사업본부 직원들을 현지 파견했을 때도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경기 시작 전부터 끝나고 난 뒤까지 굿즈숍에 긴 줄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고 수요가 충분하다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에 최 부회장은 SSG랜더스의 전신인 SK와이번스의 굿즈 사업권(IP)을 따냈고 이후 한화이글스에도 굿즈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최강 야구’ 새 시즌을 비롯해 ‘뭉쳐야 찬다’ 굿즈도 제공하고 있다. 국내 프로축구 부천FC1995 굿즈도 선보였고, 한화생명e스포츠 구단 ‘HLE’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특히 최 부회장은 스페인 프로축구클럽 FC바르셀로나의 상품화 사업 계약도 따내며 구단과 서울 지역에 ‘FC 바르셀로나 뮤지엄’을 만드는 안을 협의 중이다.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뮤지엄에서 팬들이 구단의 역사를 느끼고 자부심을 가지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봤다는 그는 “구단에서 큰 수입 중 하나가 뮤지엄과 그 내부의 굿즈 공간”이라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구단의 가치를 확대하고 아울러 IP를 독점적으로 가져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패션그룹형지가 내로라하는 구단과 계약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그는 “파트너십 선정 시 야구나 축구 등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 등을 중점적으로 본다”며 “기존 업체들은 규모가 작다 보니 서로 니즈가 달라 힘들었지만 형지는 규모나 프로세스·인력·업력 등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형지는 팬들과 구단이 모두 원하는 점을 파악해 굿즈를 만들고 사업을 진행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일명 ‘덕후’들로 구성된 스포츠 상품화 사업팀을 꾸렸고 5명 미만으로 시작한 팀은 사업이 확대되며 16명까지 늘었다.


작업복 ‘윌비’도 패션그룹형지가 주목하는 핵심 사업이다. 1998년 시작한 후 이렇다 할 차별점을 확보하지 못했던 윌비는 최 부회장이 10년 전부터 브랜드 리뉴얼을 준비해 지난해 리뉴얼을 마쳤다. 그는 윌비 브랜드로 기능성을 강화한 작업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격대는 타 사 대비 다소 높지만 좋은 원단과 패턴 등을 구현해 기능성을 높이고 몸을 보호하는 안전성 또한 확대했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수주 계약 등으로 기업 유니폼 등 기업 간 거래(B2B)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0% 증가한 279억 원을 기록했다. 성장률은 매년 30% 수준이다. 윌비를 판매하는 매장도 200개까지 늘었다.


윌비 브랜드는 기존에 공단 등 작업복 수요가 있는 지역의 편집숍에 들어갔지만 최 부회장은 윌비 단독 매장을 만들어 판매에 나서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윌비의 기성복 분야를 강화해 올해 기업과 개인 간 거래(B2C) 시장까지 적극적으로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최근 들어 중대재해법이 강화되며 안전과 연관된 작업복·작업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소규모 기업과 개별 구매 고객들을 겨냥하겠다”고 설명했다.


최 부회장은 최근 경기 둔화로 소비가 침체되면서 패션 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편안한 옷’을 선보이는 한편 오프라인 경쟁력을 강화해 위기에서 벗어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입는 사람이 편안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온라인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오프라인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전국 2300여 개에 달하는 오프라인 매장 점주들과 스킨십을 하고 있다. 주말마다 지역별 매장을 직접 찾는다는 그는 지난 주말에는 1박 2일간 임원 5명과 대전·대구·부산·김해·광양·광주·전주·평택·화성 등 9개 지역의 대리점을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도 했다.


최 부회장은 “토종 패션 업계에서 1등 기업이 되는 게 목표”라며 “패션만 파는 회사가 아니라 뮤지엄과 같은 문화와 경험을 제공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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