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동업 첫 주총 표대결…고려아연 vs 영풍 ‘1승 1패’

고려아연 제시 주당 5000원 배당안 통과
최대 2조 유증 정관 변경은 부결…영풍 승리
주주 출석률 90% 넘어 높은 관심
국민연금, 고려아연 손 들어줘

장형진 영풍 고문(왼쪽)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75년 간 동업 관계를 이어온 고려아연(010130)과 영풍(000670) 오너 일가가 고려아연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처음 맞붙어 '1승 1패'의 성적표를 나눠가졌다. 이번 주총은 무승부로 막을 내렸지만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펼치는 양측의 치열한 다툼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고려아연은 19일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 본사 별관 빌딩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1949년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에서 동업을 시작한 고려아연과 영풍은 현재 이곳을 모두 본사로 쓰고 있다. 이번 주총 표대결에 앞서 고려아연 측은 우호지분 포함 약 33%, 영풍 측은 약 32%를 확보했으며 8.39%를 쥔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로 나섰다. 이날 주총에는 의결권을 쥔 주주 90.31%가 출석해 높은 참여율을 나타냈다.


양측이 각각 다른 의견을 낸 배당안에 대해서는 주당 5000원 제시한 고려아연 측이 승리했다. 영풍은 주당 1만 원을 배당할 것을 주장했으나 전체 참석 주주의 62.6%가 고려아연측 배당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집계됐다. 앞서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중 상당수는 고려아연 측 의견에 찬성을 권고했으며 국민연금도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의 국내 관계사 리앤모어그룹 측은 “ISS는 영풍의 1만원 배당 요구에 대해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고려아연 측에 찬성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 관계자도 “최근 회사의 수익성이 낮아지고 있어 배당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부족해 고려아연 의견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반면 고려아연 측이 제시한 유상증자 대상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은 부결됐다. 해당 안건은 고려아연이 유증 대상을 국내 법인으로 확대하기 위해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조 원대의 신주발행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을 모았다. 이 안건은 전체 참석주주의 53.02%가 찬성, 46.98%가 반대해 부결됐다. 국민연금은 찬성표를 던졌다.


해당 안건은 주총 참석 주주들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되는 특별결의 사항으로, 주총 시작 전부터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ISS는 물론 국내 의결권 자문사 대부분도 해당 안건에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


서스틴베스트 관계자는 “정관이 바뀌면 국내 법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신주 발행 우려가 커질 수 밖에 없다”면서 “유증이 실현되면 주주가치 훼손 위험이 있다는 부분을 감안해 반대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한편 장형진 영풍 고문이 포함된 이사진 선임 등 나머지 안건은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장 고문이 다시 한번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되면서 향후 이사회 내 잡음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첫 표대결을 기점으로 두 집안간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됐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고려아연 최기호 창업주와 영풍 장병희 창업주는 1949년 영풍을 공동 창업했다. 이후 1974년 고려아연을 함께 설립하며 기업을 공동 경영해왔다. 그러나 고려아연이 최윤범 회장 등 3세 경영 체제로 내려오면서 영풍과의 계열 분리 포문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영풍 별관 사옥 앞. 사진=이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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