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없인 반도체 전쟁서 한국만 주저앉을 것”

전직 고위관료들 제언
"대기업 특혜 지적 답답해"
"WTO 걱정도 한가한 소리"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기지 내부. 사진 제공=삼성전자

미국와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반도체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는 가운데 통상 마찰 우려와 대기업 지원을 이유로 한국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은 19일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경쟁국에서 매섭게 추격 중이고 비메모리 분야는 압도적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만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 우리 반도체 산업은 주저 앉을 수밖에 없다”면서 “대기업 특혜 등을 이유로 반도체 보조금을 반대하는 것은 답답한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주요국은 이미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보조금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당장 미국은 삼성전자에만 60억 달러(약 8조 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유럽과 일본, 인도 등 경쟁국은 반도체 기업 유치를 위해 공장 건설 비용의 40~70%를 보조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반면 한국의 반도체 보조금은 ‘제로’로 올해 말 만료되는 투자세액공제 등이 지원책의 전부다. 국내 주요 반도체 생산기지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홍석우 전 지경부 장관은 “미래 먹거리를 위해 반도체를 우선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보조금 지급 시) 예산 문제가 있겠지만 큰 틀에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대기업 특혜, 세계무역기구(WTO) 제재 가능성 등 보조금 반대 여론에 대한 지적도 많다. 주제네바대사를 지낸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WTO를 걱정하거나 대기업 지원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글로벌 기조를 모르는 한가한 소리”라며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해야 하는데 기업 혼자서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중소·중견기업이 얽혀 반도체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 정치권에서도 보조금 논의가 물꼬를 트고 있다. 국민의힘은 세액공제 등 간접 지원만 가능한 기존 지원 체계를 개편해 보조금 지급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다만 반도체 보조금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다른 국가에서 대놓고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검토를 해야 하는 시점인 것은 맞다”면서도 "(보조금 지급 시) 반도체 산업에 어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할 것인지, 이차전지 등 다른 산업군에는 국가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보조금보다)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과 지방자치단체 인허가 기간 단축 등이 경쟁력 측면에서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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