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탈에 허리띠 졸라매는 병원들…'급여반납' 카드도 꺼냈다

상계백병원, 전체 교수 대상 급여반납 동의서 보내
신규채용 금지·육아휴직 확대 등 추가 자구안도 검토

전공의 집단행동이 한 달을 넘기며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19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 병원 사정으로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의과대학 증원 추진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 이탈이 한 달째 이어지면서 경영난에 부딪힌 수련병원들이 잇따라 '비상경영 체계'에 돌입하고 있다. 의료진으로부터 급여액의 일부를 반납하는 데 대한 동의를 받고 있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인제의대 상계백병원은 최근 전체 진료교수(전문의)에게 병원장 명의로 6개월치 급여 반납에 동의를 구하는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 동의서에는 의료사태(전공의 집단행동)에 따른 병원의 경영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급여 일부를 자의에 따라 반납하며, 향후 이와 관련해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급여를 반납하는 방법은 월 116만 원과 월 48만 원 중 한 가지를 고르거나 자율적으로 반납 금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동의서를 제출할 경우 이르면 이달부터 오는 8월까지 월급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48만~116만원 가량 줄어들게 된다. 인제학원은 상계백병원 외에도 부산백병원, 해운대 백병원, 일산 백병원 등 4개 산하병원을 두고 있다.


인제학원 관계자는 "인제학원 소속 병원들이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매주 비상경영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 중"이라며 "환자 수가 줄어 경영이 어렵다보니 육아휴직 확대, 신규 채용금지 등 다양한 대안이 나오고 있는데 상계백병원이 급여액의 일부를 반납하는 안을 냈다"고 설명했다. 인제학원에 소속된 전체 병원에 일괄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계백병원에 국한되는 사안이며, 의료진의 자율적인 의사에 맡기기 위해 조사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처음에는 책임교수들만 하자고 하다가 고통분담 차원에서 전체 교수에게 메일을 보낸 것으로 안다"며 "다른 병원들도 병원장 등 주요 보직자들이 보직수당을 반납하는 데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제학원 측은 구체적인 적자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인제학원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때도 이순형 이사장을 비롯해 재단본부장, 의료원장, 산하병원장들이 급여액의 25%를 약 4개월에 걸쳐 자진 반납한 전례가 있다. 당시 산하기관의 주요 보직자들도 급여액의 일부를 자발적으로 반납했다. 산하기관 중 가장 적자 폭이 컸던 서울백병원의 경우 20년간 누적적자가 1745억 원에 달하는 등 경영난을 이유로 지난해 문을 닫았다. 상계백병원은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후 수십 억 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병원만의 사정은 아니다.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지 한 달이 넘어가고 수술 등이 평소 대비 절반을 밑돌면서 국내 대학병원들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소위 빅5 병원은 전공의 비중이 40%를 넘나들다 보니 타격이 더욱 심해 하루 10억 원 이상 적자가 나는 상황이다. 서울대병원은 기존 500억 원 규모였던 마이너스통장의 한도를 2배 수준인 1000억 원 규모로 늘렸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15일부터 의료 공백 최소화를 위한 비상경영체계 운영에 돌입했고, 직원 대상 무급휴가 신청과 함께 신규 채용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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