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자에게 준 상 놀랍고 기뻐”…김혜순 시인 ‘날개 환상통’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등단 45주년 김혜순 시인의 시집
최종 후보작 5개 중 번역본 유일
시부문 수상작 중 번역본 최초
"또 하나의 여성 택해줘 감사"

NBCC 시 부문 최종 후보작 /NBCC 홈페이지 갈무리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은 날개를 들어 올리듯/


마스카라로 눈썹을 들어 올리면/


타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나를 떠밉니다/


내 시를 내려놓을 곳 없는 이 밤에



  • - 김혜순 ‘날개 환상통’ 중



등단 45주년을 맞은 김혜순 시인의 시집 ‘날개 환상통’이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 어워즈) 시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 작가의 작품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것은 김 시인이 처음이다.


21일(현지시간)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는 미국 뉴욕 뉴스쿨에서 개최한 2023 NBCC 어워즈에서 ‘날개 환상통’의 영문 번역 시집인 ‘팬텀 페인 윙즈(Phantom Pain Wings)’를 시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김 시인은 수상 소감을 묻자 “NBCC에서 시 부문이 생겨난 뒤 번역본 수상이 최초”라며 “아시아 여자에게 상을 준 것이 놀랍고 기쁘다”고 밝혔다.


이 시집은 경쟁작인 ‘모든 영혼들(새스키아 해밀턴)’, ‘무뢰한들의 모임(로미오 오리오건)’, ‘안내 데스크(로빈 시프)’, ‘미세 증거(샤리프 새너헌)’ 등 4개 후보를 제쳤다. 주최측에 따르면 NBCC 어워즈 시 부문 최종후보작 5개 중 번역본은 김 시인의 날개 환상통이 유일했다.


'날개 환상통'은 김 시인의 등단 40주년이던 201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그의 열세번째 시집이다. 날개 환상통은 지난해 5월 미국의 출판사 뉴디렉션 퍼블리싱에서 출간된 이후 현지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 시집은 미국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말 선정한 ‘올해 최고의 시집 5권’에 포함되면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김 시인은 특히 여러 차례 번역을 맡았던 오랜 동료인 최돈미 시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날개 환상통을 번역한 한국계 미국인인 최 시인은 김 시인의 전작 시집 ‘불쌍한 사랑 기계’, ‘전 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 등을 영어로 옮긴 바 있다.



김혜순 시인 /사진 제공= 문학과지성사


김 시인과 번역가인 최돈미 시인은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수상자를 대신해 참석한 제프리 양 뉴디렉션퍼블리싱의 편집자는 김 시인의 수상 소감을 대독했다.


“젠더는 명사가 아닌 동사입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여성을 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시집은 최돈미 시인과 함께 썼기에 그녀와 함께 상을 받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NBCC는 미국의 언론·출판계에 종사하는 도서평론가들이 1974년 뉴욕에서 창설한 비영리 단체로, 1975년부터 매년 그 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영어로 쓰인 최고의 책을 선정해 시·소설·논픽션·전기·번역서 등 부문별로 상을 준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독자들의 책 선정에 있어 길잡이가 된다는 평가를 받는 권위있는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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