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계약 액수로는 창사 이후 최대인 18조 원을 투자해 에어버스의 A350 33대를 첫 구매한 배경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을 합병을 앞둔 아시아나항공의 주력 기종(A350)을 대규모 도입해 통합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포석으로 보고 있다. 한 번에 최대 1만 6000㎞를 비행할 수 있고 동급 항공기보다 탄소 배출이 25% 적은 A350으로 장거리 운항 사업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동시에 확대한다는 계산도 포함돼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이번에 도입한 A350 기종 가운데 A350-900은 아시아나항공이 2017년 국내 항공사로는 최초로 도입해 지금까지도 주력 기종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장들이 자유롭게 교체 투입돼 각사의 항공기를 조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동일 기종을 운항하면 기장들이 별도의 면허를 취득하거나 기종 전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며 “같은 A350 기종의 경우 모델이 다르더라도 별도의 추가 교육만 받으면 조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종 단일화는 부품 수급이나 정비 등 운영비를 절감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이 비용 감축을 통해 급속 성장을 이룬 요인으로 기종 단일화가 꼽히기도 한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통합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대한항공의 전략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A350 도입은 장거리 운항 사업을 확대하려는 조 회장의 전략이기도 하다. A350 가운데 가장 큰 모델인 A350-1000은 주유 한 번에 인천을 출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까지 직항 운항이 가능하다. 지난해 4분기 대한항공의 전체 매출에서 장거리에 속하는 미주와 유럽 노선 비중은 60% 이상으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48%)보다 크게 늘었다. 또 A350-1000은 운항 한 번에 승객 최대 410명을 태울 수 있는 ‘광동체(와이드 바디)’로 분류되는데 자연스럽게 실을 수 있는 화물량도 늘어나 항공 화물을 확대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항공 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탄소 감축도 A350 도입으로 대한항공이 얻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2050년 항공 업계의 탄소 감축 목표를 글로벌 항공 업계와 합의한 만큼 대한항공에도 탄소 감축은 주요 과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A350은 고강도지만 가벼운 소재를 활용해 중량을 크게 낮춰 탄소 배출이 최대 25% 적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며 “고효율 항공기를 해외 장거리 노선에 투입해 ‘저탄소 항공’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현재 파리~인천 노선에서 기존 항공유에 친환경 연료인 바이오항공유(SAF)를 1.5% 혼합해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