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공직에 몸담았던 김모(62) 씨는 은퇴 후 여행이나 다니며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부양해야 할 늦둥이 자녀가 둘이나 있어 경제활동을 멈출 수 없었다. 재취업을 고민하던 김씨는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다는 택시기사 면허를 취득했다. 택시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김씨는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복잡한 도심에서 장시간 운전을 지속하다 보니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 악화된 것이다. 차에서 내릴 때마다 앓는 소리를 내던 김씨는 다리까지 저려와 운전할 때도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허리디스크 초기 증세로 보인다며 휴식을 권고했지만 1억 원에 달했던 개인택시 양수 비용을 생각하면 치료에 전념할 엄두가 나지 않아 고민 중이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90세에 접어들었다. 5년에 한 번 발표되는 보험개발원의 경험생명표 통계에 따르면 남성의 평균수명은 86.3세, 여성은 90.7세로 5년보다 각각 2년 정도씩 증가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정년 연장, 은퇴 후의 삶 등 노후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을 이어가며 새로운 길을 찾는 이들은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고령층 자영업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207만 3000여명으로 집계됐다. 고령층 자영업자 200만 명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개인택시와 같은 운수업 종사자도 30만 5800여명으로 2018년 대비 약 11만명 증가했다.
택시기사는 고령층의 수요가 높은 대표 직종으로 꼽힌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지난해 서울시에서 활동 중인 택시기사의 50.39%가 65세 이상이라는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60대는 신체의 노화가 급격히 이뤄지는 시기다. 온종일 앉아서 운전을 이어가는 행동은 척추·관절의 퇴행을 가속시켜 각종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이를 방증하듯 택시기사의 86%는 만성적인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택시기사들이 가장 많은 통증을 느낀 부위로 ‘허리’를 선택했다는 조사도 있다.
택시기사들이 유독 심한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이유로는 ‘앉은 자세’가 꼽힌다. 앉아 있을 때는 서 있을 때보다 약 1.5배 큰 압력이 척추에 가해진다. 택시에서 온종일 앉아 근무하면 척추뼈와 뼈 사이 디스크(추간판)에 지속적인 하중이 가해져 ‘퇴행성 허리디스크’를 앞당길 수 있다. 60세 이상 고령층은 이미 디스크가 약해져 있을 확률이 높으므로 더욱 주의를 요한다.
오랜 기간 건강하게 경제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초기 근골격계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적극적으로 진료에 나서는 것이 현명하다. 허리 통증, 하지방사통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는 등 허리디스크 징후가 있을 경우 서둘러 검사를 받아보길 권한다. 일찍 진료에 나설수록 치료 예후가 좋고 치료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이 절감될 뿐 아니라 업무에 복귀하는 시기를 더욱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추나요법, 침·약침 치료, 한약 처방 등을 병행하는 비수술 한의통합치료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추나요법은 오래 앉아있는 습관으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틀어진 척추·관절을 올바르게 교정함으로써 척추의 기능을 되살리는 데 중점을 둔다. 침치료는 혈액순환을 촉진해 굳어진 허리 근육을 이완하는 데 효과적이다. 약침치료는 한약재 성분을 직접 주입해 염증과 통증을 신속하게 가라앉히는 동시에 손상된 척추 조직의 회복을 돕는다. 증상과 체질에 맞는 한약을 함께 복용하면 디스크에 영양을 공급하고 약해진 척추 근육과 인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허리디스크에 대한 한의치료는 진통제나 각종 시술보다 안정적인 치료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입증됐다 . SCI(E)급 국제학술지 ‘통증연구저널(Journal of Pain Research)’에 게재된 자생한방병원의 논문에 따르면 침치료와 추나요법 등 비약물 한의치료가 신경차단술 및 진통제를 포함한 약물치료보다 효과, 비용 등의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실험군의 하지방사통 NRS(통증숫자평가척도, 값이 높을수록 통증이 심함을 뜻함)를 분석한 결과 비약물 한의치료군은 치료 후 26주간 통증이 경미한 수준인 2점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반면 약물치료군은 14주 차에 4점대까지 증가했다가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각 치료군에 대한 경제성 평가 결과 비약물 한의치료군의 비용이 더욱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정년 이후에도 일하는 인구는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일상에서 느끼는 통증을 간과하는 사이 중증 질환으로 이어져 ‘웰에이징’에 위기를 겪는 경우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 현대 사회의 화두인 만큼 자신의 건강을 꾸준히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