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에서 정년 폐지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일본 인구가 감소한다는 미래 전망도 정년 폐지론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대기업들은 최근 정년 제도를 폐지했거나 정년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한때 정년 폐지에 회의적이었던 일본 정부도 현실적인 선택지로 적극 검토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앞서 2월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일을 하고 싶은 시니어층에게 일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각 기업의 상황에 따라 직무 정년·정년제의 재검토등을 검토해달라"며 운을 띄웠고 이후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지퍼 제조업체인 YKK그룹은 지난 2021년 65세 정년제도를 폐지한 뒤 이를 유지해오고 있는 대표적 기업이다. 현재 기준 65세 이상 근로자 49명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이 회사는 근로자와 면담을 통해 정년 이후 근로자의 역할을 결정한다. 성과가 기대를 밑돌 경우 이직을 권고할 수 있게 하는 등 사측의 카드도 확보했다. 성과와 실력에 따라 보수를 책정해 정년 전보다 적은 월급을 지급할 수도 있다.
일본의 대형 화학 기업인 미쓰비시 케미칼도 정년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21년에 직무 중심으로 고용제도를 바꿨다. 직책과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불하는 관행이 자리잡게 되면 단순 연령에 따라 일률적으로 퇴직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고 정년제도 폐지의 연착륙이 가능해진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기업 전반에 정년 폐지론이 확산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적지 않다.
일본 민간 연구기관인 ‘리쿠르트웍스연구소’의 사카모토 타카시 연구원은 “노동 공급 제약은 일본의 심각한 과제이지만, 정년 폐지의 허들은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이 폐지를 주저하는 이유는 회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직원들의 처우”라며 “해고 규제가 엄격한 일본에서 정년은 고용자가 사원에게 퇴사를 요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근거로, 해고 관련 법제도와 함께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후생노동성의 고령자 고용 상황 등 보고를 보면 기업 규모가 작아질수록 정년제를 폐지하고 있는 기업의 비율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 301명 이상인 기업은 정년 폐지율이 0.7%이지만 31~300명은 3.3%, 21~30명은 6.4%로 나타났다. 사카모토 연구원은 “규모가 작은 회사는 근로자 개인에게 어떤 역할을 주고 그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개별 대응을 할 수 있어 정년 폐지가 보다 수월하다"며 “대기업도 개별 대응에 힘을 쏟는다면 정년 폐지를 검토할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이나 영국은 연령 차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정년제도를 금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