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가 가상자산 비트코인 채굴 용도로 쓰이는 전력을 옥수수 등 농업 분야로 재배치할 계획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최근 이상 기후 등의 영향으로 농작물 가격이 급등하는 이른바 ‘애그플레이션’ 국면에서 식량 안보를 지키려는 목적의 일환이다.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는 이날 FT와 인터뷰에서 “국토 대부분이 빙하인 특성상 농업이 대단한 분야는 아니지만, 우리의 안보 전략에 중요한 부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유럽 농부들의 시위, 무역 차질 속에 아이슬란드가 농산물 수입 의존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아이슬란드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FT는 유럽 내 식량 안보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유럽연합(EU)이 기후위기와 관련해 엄격한 탄소배출 규제를 도입하면서 주요 농산물 수출국들은 생산량을 줄이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야콥스도티르 총리는 “전 세계적으로 고립주의 경향이 커지고 있다”며 “아이슬란드는 수입 옥수수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공급망 중단 위험을 고려하면 옥수수를 직접 재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는 현재 소비하는 곡물의 1%, 채소의 43%만 자국에서 생산 중이다. 아이슬란드 국토 중 농업에 이용되는 비중은 약 20%에 불과하다. 이에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농장 자금 지원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아이슬란드에 대거 들어선 데이터센터에서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이들을 억제하려는 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아이슬란드는 풍부한 수력발전과 지열발전을 바탕으로 에너지 비용이 저렴한 덕분에 글로벌 비트코인 채굴 비중 1위로 꼽힌다. 리서치 업체 룩소르의 연구를 보면 아이슬란드의 데이터센터를 통해 비트코인 그룹 수십 곳이 활동 중이며, 이들이 소모하는 전력량은 120㎿로 아이슬란드 전체 가구의 전력소비량을 웃돈다.
이러다 보니 다른 곳에 공급할 전력이 부족해졌고, 특히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 부문에서 생산 차질이 빚어졌다. 아이슬란드의 한 생선 가공 공장은 에너지 수요를 맞추기 위해 화력발전소로 전환해야 했다. 정부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콥스도티르 총리는 “아이슬란드 시민 37만5000명의 에너지 수요가 최우선”이라며 “데이터센터가 귀중한 재생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주택 및 기타 산업으로 재분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슬란드의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 가상자산 채굴 행위는 ‘녹색 산업’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