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업계 1위인 이마트(139480)가 창사 31년 만에 첫 희망퇴직을 단행한다. 지난해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 부진을 겪는 상황에서 인력 효율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려는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유통산업의 무게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며 마트 업계가 고전하는 가운데 인력 감축 분위기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마트는 25일 근속 15년 이상인 과장급 이상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이날부터 4월 12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내용의 공고를 게시했다. 혜택으로 특별퇴직금은 월 급여 24개월 치(기본급 기준 40개월 치)와 2500만 원의 생활지원금, 직급별 1000만~3000만 원의 전직지원금을 제시했다.
국내에 대형마트의 개념을 들여와 1993년 창립한 이마트가 전사 차원에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마트는 올해 초 폐점을 앞둔 상봉점과 천안 펜타포트점 직원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접수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희망퇴직 대상을 전사적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마트가 희망퇴직 카드를 꺼내든 것은 일요일 의무휴업 등 정부 규제로 발목이 잡힌 가운데 온라인 위주로 재편되는 유통시장의 판도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마트의 영업이익은 2021년 이후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는 연결 기준으로 사상 첫 영업손실 469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쿠팡 등 국내 e커머스에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까지 이마트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마트는 희망퇴직과 관련해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채양 이마트 대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이번 조치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쿠팡에 더해 알리·테무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성장한 e커머스의 위협으로 오프라인 소매업의 종말 전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미국 월마트처럼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옴니채널’을 했어야 했는데 국내 업체들은 온라인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마트 직원 수가 마지막으로 전년 대비 순증했던 해가 무려 7년 전인 2017년입니다. 위기 신호가 계속 감지됐지만 결국 혁신을 이뤄내지 못한 결과가 이번 희망퇴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
이마트가 1993년 창립 이래 31년 만에 첫 희망퇴직을 단행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채널로 넘어가는 유통시장의 판도 변화에 재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유통업체 매출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유통시장에서 온라인 채널 매출 비중은 50.5%로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급성장하는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절대 강자인 쿠팡이 급속히 세를 키우면서 오프라인 강자 이마트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급기야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 29조 4722억 원을 거두며 31조 8298억 원을 기록한 쿠팡에 매출 1위 자리마저 내주고 말았다.
더욱 큰 문제는 온라인 채널의 위협이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점이다. 2022년 기준 온라인 유통시장 점유율 24.5%를 기록한 쿠팡이 수년 내에 50%를 넘길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에 더해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e커머스 플랫폼에도 안방을 빼앗기고 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알리는 11번가를 제치고 2위에, 테무는 G마켓을 넘어서 4위에 올랐다.
이마트도 온라인 채널의 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고 2022년 당시 정용진 신세계(004170)그룹 부회장이 ‘오프라인도 잘하는 온라인 회사’를 표방하며 관련 사업 강화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신세계의 e커머스 플랫폼인 SSG닷컴과 G마켓은 지난해까지도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온라인 쇼핑 시장을 내준 상황에서 규제에 묶여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확실한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대구와 서울 서초·동대문구에 이어 부산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전환했거나 전환 중이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대형마트들은 하소연한다. 쿠팡이 지금도 새벽배송을 기반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으로 인해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배송을 하지 못하는 규제에 묶여 있다. 새벽배송을 위해서는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는 야당의 반대에 막혀 법 개정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이마트의 실적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2021년 3168억 원까지 올라갔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2022년 1357억 원으로 주저앉았고 급기야 2023년에는 469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부진한 실적 등을 이유로 최근 신용평가사들은 이마트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22일 이마트의 장기신용등급을 기존 ‘AA(등급전망 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낮췄다.
이마트의 직원 수도 쪼그라들고 있다. 직원 수는 2017년 2만 7608명까지 늘어난 후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며 2023년 기준 2만 2744명까지 줄어들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직원 수가 최근 계속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회사가 창립한 지 30년 정도 되다 보니 정년퇴직 등으로 인한 자연감소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마트가 자연감소분을 다시 늘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생존을 위해 인력 감축이라는 고육책을 꺼내든 것은 비단 이마트뿐만이 아니다. 롯데마트는 2020년 실적이 좋지 않은 점포 12개를 정리하고 이듬해인 2021년 상반기와 하반기, 그리고 지난해 11월까지 세 차례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업계 일각에서는 1995년 입사해 29년 만에 회장직에 오른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쇄신의 신호탄을 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마트는 최근 사업보고서에서 “저비용 구조를 확립해 수익성 개선을 지속하겠다”며 “업무 전반에 간소화 프로세스를 구축해 인력 운영과 배치를 최적화하고 비핵심 자산 효율화 등을 통해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기존 온라인 시장 공략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상용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 플랫폼 공습도 물론 문제지만 그 이전에 온라인 시대 적응력이 부족했다”며 “5~10년 뒤까지 버틸 자본이 충분하다면 쿠팡처럼 전략적 손실을 보면서 시장점유율을 넓히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기존 온라인 강자와의 연대 등의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