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떼어지는 페트병 라벨의 비밀

[지구를 해치는 기업들]②기업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페트병 라벨, 설비 교체 없어도 개선 가능
최종적으로 플라스틱 소비 줄여야…대안은
보틀투보틀·바이오베이스 플라스틱·리필 등
기업 실천 사례 아직 적어…정책·규제 필요

라벨의 절취선대로 훌륭하게 뜯어졌던 매일유업의 '썬업'.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를 못 봤습니다. 페트병은 라벨과 분리배출해야 하는데, 떼기 어려우면 아무도 라벨을 떼려고 하지 않을테니까요." 한국에서 파견 근무 중인 와타나베 나츠메 교도통신 기자의 말입니다. 일부 한국 페트병 제품의 라벨은 무척 떼어내기 어렵다는 말에 “일본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고 전해줬습니다.


페트병 생산 설비 통째로 바꾸지 않아도…방법은 있다

잘 아시다시피, 일본이나 유럽의 음료 기업들은 생산 단계부터 떼기 쉬운 라벨을 부착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렇게 못 하고 있는 걸까요? 임기백 매일유업 포장연구팀장님의 설명을 들어봤습니다. 참고로 매일유업 '썬업 주스'의 라벨은 1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절취선을 따라 아주 가볍고 신속하게 뜯을 수 있었습니다.


"페트병 라벨은 주로 페트(PET)나 폴리스티렌(PS) 재질입니다. 이 중에서 PET 재질이 상대적으로 잘 안 찢어지는데, 매일유업은 PS 재질입니다. 다른 회사들도 다 PS로 바꾸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각 기업마다 생산 설비에 맞는 재질을 씁니다. 예를 들어 PET 라벨을 쓰던 회사가 PS 라벨로 바꾸려고 하면 기존 설비를 다 바꿔야 하는 거죠. 하필이면 라벨 설비는 충전(음료수를 페트병에 투입하는 공정)설비와 세트라서 라벨을 바꾸려면 충전 설비까지 바꿔야 됩니다. 설비 변경이 쉽지는 않은 문제인 거죠."


그렇지만 설비를 통째로 바꾸지 않아도 답이 있긴 하다는 말씀입니다. "절취선 점선의 갯수를 늘리거나 점선 구멍의 크기를 키우면 설비 변경 없이 더 잘 찢어지는 라벨이 됩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라벨을 페트병 몸체에 딱 맞도록 열을 가해 수축시키는 공정에서 잘 찢어질 수도 있어서, 불량률이 늘어나지 않으면서도 소비자들이 뜯어내기 쉬운 접점을 찾는 게 어렵죠. 그래도 소비자들이 '잘 뜯어지지 않는다'고 문제 제기를 많이 하면 바꿀 거예요. 담당자들이 그 접점을 찾느라 골치가 아프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절취선대로 뜯기 어려웠던 ‘솔의눈’.

끝판왕 : 플라스틱 소비 줄이기

물론 '라벨이 잘 떼어지는 페트병'이 궁극의 대안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페트병 소비를, 플라스틱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이러한 방향에 맞춰 아래와 같은 다양한 대안들이 이미 도입되고 있습니다. 경제성이나 기술적인 효율이 다르고, 혹은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속도의 차이도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대안이 동시에 제각각 확산되면서 마침내 플라스틱 사용량 감소라는 한 점을 향해 달려갈 겁니다.


①마시고 난 플라스틱 음료병을 다시 음료병으로 만드는 '보틀 투 보틀(Bottle to bottle)’. 식품을 담았던 터라 물로 세척하기 쉽고, 병도 규격화돼 있어서 재활용하기가 쉽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무한 업사이클링이 가능한데, 다만 보틀 투 보틀이 안착된다 해도 플라스틱 소비량 전반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100만큼의 플라스틱을 생산했는데 소비되는 플라스틱이 200, 300으로 늘어난다면 재생원료로는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②식물성 원료 등으로 만든 바이오 베이스(Bio-based) 플라스틱은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적습니다. 게다가 톱밥, 볏짚, 옥수숫대 같은 부산물로 플라스틱을 만들기 때문에 남김 없이 자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 플라스틱과 똑같이 분리배출하고 재활용할 수 있고요.




③'재활용만 잘 된다면' 플라스틱보다 탄소배출량이 적은 소재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리병 하나를 20회 정도 재사용할 경우면 1회당 탄소배출량은 42.9g-CO2로 일회용 유리병·페트병·알루미늄캔·철캔 등보다 낮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한살림에서는 잼, 장, 케찹, 젓갈류 등 병에 담아 파는 품목을 점점 늘리면서 자체 반환 및 보상 시스템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소주병, 맥주병처럼 똑같은 색깔의 유리병들은 보증금 반환제도를 통해 수거 및 재활용하고 있고요.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공병 반환율은 무려 96.4%나 됩니다. 프랑스에서는 코카콜라의 콜라, 환타, 스프라이트, 미닛메이드가 똑같은 병(라벨만 다릅니다)에 담겨 판매되고 있습니다.


④리필의 확산도 필요합니다. 코카콜라는 일부 유럽 국가에서 개인컵을 이용할 수 있는 음료 디스펜서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음료류뿐만 아니라 식품류, 세제, 샴푸, 치약, 로션 등도 어디서나 다회용기에 리필해서 살 수 있게 된다면 플라스틱 쓰레기를 확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대기업들일수록 이러한 방안들을 잘 알고는 있지만 실천에 나선 사례는 아직 적습니다. 기업들이 얼른 변할 수 있도록 소비자들의 채찍질도 중요하지만, 정책과 규제 도입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다음 편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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