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日 금리 변동기…갈곳 잃은 돈, 파킹형 상품에 몰렸다

RP잔액 85조…1년9개월來 최고
CMA도 79.5조로 역대 최대치
美 금리인하, 6월이후로 뒷걸음질
日 금리인상에도 엔화 약세 지속
"코스피 2700 부담…4월 이벤트 관망
실적·총선 따라 자금이동 본격화할 듯"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와 환율을 모니터하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벌 증시 향배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해외 주요 국가의 기준금리가 변곡점에 도달하는 등 변화를 맞으면서 물밑에서 자금 움직임이 활발하다. 투자처를 모색할 시간을 벌고 금리도 챙길 수 있는 이른바 ‘파킹용’ 상품이 인기다. 당장 레고랜드 사태로 메말랐던 환매조건부채권(RP) 잔액은 1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도 역대 가장 많은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음 달 나올 기업 1분기 실적, 총선 결과 등에 따라 자금 이동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2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의 대고객 RP 매도 잔액은 84조 9831억 원(22일 기준)으로 2022년 6월 이후 1년 9개월여 만에 가장 많았다. 대고객 RP는 증권사가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소정의 이자를 더해 다시 사들이는 조건으로 판매되는 채권이다. 개인과 법인 등에 단기로 판매하는 대표적인 파킹형 금융상품으로 꼽힌다. RP 잔액은 2022년 9월 촉발된 레고랜드 사태로 단기금융·채권시장이 경색되면서 같은 해 12월 59조 원까지 쪼그라들었다가 한국은행이 RP 매입에 나서면서 수급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는 채권금리가 오른 덕에 RP 수익률이 높아져 매도 잔액이 80조 원대까지 계속 느는 추세다. 대고객 RP 매도 잔액이 늘어났다는 것은 RP 매수가 증가했음을 뜻한다. 증권사 계좌에 자금을 예치하면 1%대 이자를 받지만 RP는 연 3%대의 수익률이 가능하다. 또 국공채 등을 담보로 발행되기 때문에 높은 안정성이 보장된다.


고객이 예치한 돈을 증권사가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한 뒤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인 CMA에도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금투협에 따르면 CMA 잔액은 이달 79조 5244억 원(22일 기준)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두 달여 전만 해도 CMA 잔액은 69조 원 남짓이었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시가 혼조 국면에 접어들면서 투자처를 정하지 못한 개인투자자들과 법인 자금이 파킹형 상품으로 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MA와 함께 대기성 자금의 피난처로 꼽히는 머니마켓펀드(MMF) 잔액도 이달 210조 원대로 올라서는 등 투자자 사이에서는 관망세가 뚜렷하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국가들의 기준금리의 움직임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앞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20일(현지 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중 3차례 금리 인하 전망을 고수했다. 하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 문제가 확실하지 않다고 발언하면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5월에서 ‘6월 혹은 그 이후’가 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최근 발표된 2월 생산자물가지수가 전월 대비 0.6% 상승하며 시장 예상치(0.3%)를 웃돌자 미 통화 당국의 완화적 입장이 강화될지, 아닐지를 두고도 의견이 갈린다. 일본은행(BOJ)도 최근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했지만 엔화 약세가 계속되고 있는 점도 예측을 어렵게 하고 있다. BOJ가 앞으로 얼마나 금리를 올릴지에 대해서도 시각이 분분하다. 중국 역시 지급준비율을 연이어 낮춰오며 위안화 약세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 2년간 도달하지 못했던 상징적인 레벨인 코스피 2700 선을 빠르게 돌파하다 보니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속도에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글로벌 증시 흐름도 금리 변화와 맞물려 어지러운 상황인데 4월 다가올 한국의 수출 지표와 1분기 실적 발표, 총선 등 신규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는 이벤트가 대기 중인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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